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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소일 독서론

소일 독서론

소일(消日)은 사라질 소, 해 일, 하는 일 없이 세월을 보낸다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킬 타임이죠. 살면서 모든 시간을 빈틈없이 알뜰하게 보낼 수는 없습니다. 일도 하고 휴식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휴식을 그냥 멍하니 보내면 바보 같죠? 그래서 쉬면서도 좀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그중 하나가 독서라는 건데, 저는 왠지 그런 독서는 좀 독서답지 않아 보입니다. 무턱대고 책을 읽는 것은 아무래도 건성 같아서요. 사실 별 목적 없는 독서는 마이동풍이라 독서의 효용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진짜 독서는 공부라는 건데, 공부는 사람에 따라 개인차가 큽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좋은 대학 가는 건 당연한 거죠.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정말 책을 마음먹고 읽습니다. 그들은 책을 빌리기보다 책을 삽니다. 자기 책으로 만들어야 밑줄도 치고 메모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글을 쓰거나 문제를 풀 때 잘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부 안 하는 학생은 교과서도 읽지 않지요. 하하. 그러니 하물며 다른 책이야 말해 무엇하리오. 하하.

그런데 우리의 도서관들은 공부 말고 독서만 하라고 합니다. 그럼 소일 독서만 하라는 건가요? 독서를 권장하는 분들, 특히 사서들은 독서를 잘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책을 관리하며 독서를 권장하면서 자신들은 책을 잘 안 읽어요. 그러면서 도서관은 공부방이 아니라고 하고, 공부하는 학생들을 별도로 관리하지요. 도서관 책에는 밑줄, 메모를 못 하게 하며 대부분의 장서를 ‘소일 독서’용으로 관리합니다.

좋은 대학의 도서관에 가 보면 학생들이 소일 독서를 하기보다는 진짜 마음먹고 독서를 합니다. 대학이란 학문의 전당이기에 도서관도 학문의 장소로 이용하지요. 그런 대학도서관은 개인 연구실도 만들어 놓고 논문을 쓰거나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도서관의 책에는 메모할 수 없지만, 그래서 학생들이 꼭 필요한 책은 직접 사서 봅니다. 학교 안에 교보문고가 있는 대학도 있는데, 서점이 장사가 안되면 학교에 있겠어요?

그래서 제 말씀은 각종 도서관에서 모든 사람이 뭔가 목적을 가진 진짜 독서를 할 수 있도록 도서관 경영의 무게 중심을 이동하는 게 좋겠다는 것입니다. 진짜 독서를 할 수 있는 곳, 진짜 공부할 수 있는 곳, 이것이 도서관이 학문의 발전과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길 아닐까요? 공부를 도와주는 프로그램도 계층별로 다양하게 마련해야 합니다. 그런 프로그램도 책과 무관한 것은 없겠죠. 시민 소통의 공간도 꼭 필요합니다. 문화예술공간도 필요하고요. 참 할 일은 많은데 크고 작은 많은 도서관이 주로 소일 독서의 장소로 운영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2020.9.1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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