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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감흥

감흥

태풍이다 코로나다 뭐다 이런저런 이유로 여행을 멈추고 우두커니 집에 있습니다. 세상과 소통을 잘할 수 없으니 글감도 사라졌습니다. 집에만 머무르니 사유도 집에 머무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인터넷이 있어 무수한 기자들이 전하는 뉴스는 접하고 있습니다. 주로 ‘바리새인’들의 싸움 뉴스죠. 그런데 그 싸움 뉴스는 정말 인성, 정경발전, 세계 평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감정만 부추길 뿐.

너는 여행이 아니라도 할 일은 많은데 자꾸만 그 일들을 미루고 잊습니다. 고전 번역 말입니다. 핑계는 주로 코로나와 날씨, 요즘은 인사말이 “밖에 돌아다니지 마세요” 입니다. 아니면 “마스크 꼭 쓰세요.” 인근 거리에 나가면 영락없이 마스크 지그재그 행렬을 봅니다. 입과 코를 막고, 눈과 귀를 열고. 그래서 사람을 알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만일 이런 상태로 선을 본다면 마스크 위의 감흥이 생길까요?

이 감흥 없는 마스크 사회 속에서 너는 오늘도 시간을 머뭇거립니다. 그러나 마음을 잡아야 합니다. 화초에 물을 주고, 집을 청소하고, 소품의 배치를 바꿔봅니다. 음악실, 서예실, 연구실. 간이카페. 방바닥에 늘어놓은 책과 소품을 정돈하고, 시계의 전지를 갈아 끼우고 다시 의자에 앉습니다. 예전 고등학교 3학년 국어 교과서에 있던 조병화의 시, ‘의자’가 생각나네요.

의자

                                       조병화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아멘, 나무석가모니불! 2020.9.5.(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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