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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소설 쓰시네.

소설 쓰시네.

우리는 보통 ‘소설은 허구’라고 인식하고, 그래서 영어 사용하기 좋아하는 학생 시절엔 fiction과 nonfiction으로 소설과 비소설을 구분했습니다. 지금도 이런 구분은 전과 다름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젊을 때 소설 읽기를 싫어했었습니다. 다 작가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꾸며낸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누나는 소설가를 꿈꾸는 문학소녀였는데요, 저는 누나의 글도 별로 읽지 않았고 또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지요. 문학과 현실의 관계를 잘 몰랐던 무지한 시절이었지요.

제가 소설의 참맛을 알게 된 것은 오십이 넘어서입니다. 본의 아니게 대학에서 문학으로 학위를 받고, 수필을 쓰며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소설도 좀 읽게 되었는데요, 소설이 허구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 허구를 통해서 인생의 진리를 깨우쳐주는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프랑스인 문학평론가이자 사회인류학자 르네 지라르의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김치수·송의경 옮김, 한길사)이라는 책을 통해 “소설은 거짓이지만 진실이다.”라는 逆說이 힘 力자 力說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요즘 국회에서 어떤 공직자가 말했다는 “소설 쓰시네”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아니 전부터도 상대의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면 “소설 쓰지 말라, 소설 잘 보았다.”라고 비아냥거리는 경우가 더러 있었지요. 저는 언론을 통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저분들은 소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소설의 진리로 말한다면 “소설 쓰시네.”라는 말은 “진리를 말씀하시네요.”라고 해석되므로 화자의 의도와는 반대가 됩니다. 그런데 소설의 진리를 모르다 보니 소설을 꾸며낸 거짓말로만 인식하는 거죠. 국회의원이든, 장관이든, 판검사든 정말 좀 ‘소설’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말하면 좋겠네요. 노벨상에 문학상, 경제학상은 있어도 정치학상이 없는 이유를 알만합니다. 평화상이 정치학상 아니냐고요? 아, 네, 그럼 소설의 진의도 모르는 정치인이 노벨평화상을 탈 수 있을까요? 만약 그런 분이 평화상을 탔다면 그건 노벨위원회의 큰 실수일 겁니다. 2020.8.1.(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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