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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그릇 이론

그릇 이론

그릇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필수 도구입니다. 밥그릇, 국그릇, 커피잔 등등 말이지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부처님도, 공자님도 그릇 이론을 설파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부처님은 공사상으로 그릇 이론을 전개하신 것 같습니다. 본래 모든 것이 비어있는 것이므로 그릇은 큰 것도 작은 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또 모든 것이 색이라며 그릇의 모양을 인정하기도 하셨지요.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비우면 큰 우주가 되고, 마음을 채우면 소인이 된다는 말씀 같습니다.

공자님은 좀 더 직접 그릇 이론을 전개하신 것 같습니다. 논어에 君子不器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는 ‘군자는 그릇이 아니라’고 직역할 수 있고, 의역하면 군자란 마음을 크게 가져 어떤 상황도 너그러이 포용하는 인격을 가져야 한다는 말 같지요. 누구나 살다 보면 옹졸해질 때가 많습니다. 대개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면 너그러운 것 같다가도, 불리한 상황이 오면 옹졸해집니다. 옛날에도 일반인들은 그랬나 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색즉시공 사상을, 공자님은 군자불기 이론을 말씀하셨나 봅니다.

며칠 동안 바쁘고 게을러서 일기를 쓰지 못했습니다. 핑계는 강의 준비, 온라인 강의라서 콘텐츠 위주로 마치 방송처럼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준비해야 하고, 중간고사 문제도 객관식 위주로 출제해야 해서 말이죠. 대학에서는 객관식을 잘 사용하지 않는데 온라인 수업을 하다 보니 채점 관리상 객관식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은행을 만들어 놓고 반별로 다른 문제를 내되, 변별력을 맞추느라 신경을 좀 썼습니다. 고심한 덕분에 공부도 좀 더 하긴 했지요. 하지만 이러면서, 내 그릇이 얼마나 작아지는지도 새삼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지, 부처나 공자님처럼 큰 그릇이 될 수는 없는지, 지난날도 반추해보게 되네요.

작은 그릇은 작은 그릇대로, 큰 그릇은 큰 그릇대로 다 쓸모가 있을 것입니다. 이는 살림해보면 다 알지요. 하지만 그 그릇들은 물질을 담을 때만 그렇게 크고 작은 인위적 용도 구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신을 사용할 때는 그러한 크고 작은 그릇의 범주를 벗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신을 사용할 때에도 물질의 그릇처럼 옹졸해지니, 이런 점에서 우리는 태생적으로 석가나 공자에 미치지 못하는 소인적 그릇인가 보네요. 어제 코로나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해 오늘부터 신용카드 포인트로 40만원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작은 그릇을 받았지만 요긴하게 사용하여 큰 국민적 마음 그릇을 조성하는데 보탬이 되도록 해보겠습니다. 2020.5.20.(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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