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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팥떡과 인생

팥떡과 인생

인생 라인은 영겁에서 영겁으로 이어지는 영원한 우리의 라인입니다. 하지만 이 라인은 소위 선분(線分)이랑은 차원이 다른 것 같아요. 왜냐면 선분은 선의 양편을 수학적으로 갈라놓지만, 인생의 라인은 우주적 시간 라인(time line)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세계인구수는 약 77억 4천만 명, 대한민국의 인구수는 약 5천 1백만 명, 이분들이 함께 21세기의 타임라인을 달리고 있습니다. 실버들은 점점 지쳐 속도가 줄어가고 어린이들은 에너지를 발산하며 계룡의 양예빈 선수처럼 쭉쭉 힘차게 달려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 함께 21세기를 달릴 수 있다는 건 무한한 영광인 것 같습니다. 개별 인간의 달리기는 100년 정도지만 인류의 달리기는 얼마일지, 지각변동이 없는 한 아마 영원일 것 같습니다. 77억 4천만 명이 분초를 다투며 끊임없이 릴레이를 계속하고 있으니까요.

오늘 봄비가 왔습니다. 비가 그친 후 깨끗한 거리로 나가 달리기를 해 봅니다. 거리의 인구(人口)와 타임라인을 함께 하며 대전 역전에 가 다른 분들의 달리는 모습을 좀 시찰해 보았습니다. 길가의 가로수와 풀꽃들, 그들은 봄비를 머금고 생명을 즐기며 우리에게 희망과 기쁨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각기 고운 색깔로 그 어떤 미술 영상보다 꾸밈없이, 그러나 진실하게 내 마음에 와 아름다운 라인을 그려줍니다. 그런데 역사 기둥 옆에 남자 넷 여인 일이 모여 막걸리 파티를 벌이고 있네요. 오후 2시 반인데 아마 대전역을 밤낮으로 떠도는 방랑자인 것 같습니다. 그들의 릴레이가 좀 더 안전하고 아름답기를 헛되이 바라며 역전시장으로 들어갑니다.

떡집에 갓 찐 팥 시루떡이 먹음직스러워 2천 원에 두 조각을 샀습니다. 바로 먹고 싶은데, 장소가 마땅치 않습니다. 알로에 음료를 사서 함께 가방에 넣고 버스를 타고 왔습니다. 떡을 식기 전에 먹고 싶어서요. 오후 4시 반에 따뜻한 팥떡을 먹으며 알로에 음료를 마시니 그 궁합도 제법 좋은 것 같네요. 팥떡에 고추장을 조금씩 찍어 먹어보았습니다. 그것도 괜찮네요, 저는 바나나에도 고추장을 찍어 먹은 적이 있습니다. 하하. 바나나와 팥떡에 고추장 찍어 먹는 사람, 아까 2시 반에 역전에서 막걸리 마시는 사람보다는 낫지 않을까 여기며 모처럼 예전 명절 때나 먹던 팥떡으로 오늘 저의 인생 릴레이를 보완했습니다. 2020.5.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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