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컬럼/수필

공주 나들이

공주 나들이

수요일 아침에 물을 길어다 놓고, 세워둔 차를 훈련하러 밖으로 나갑니다. 아침 7시까지는 어디로 갈지, 목적지가 없었는데, 9시 이후 공주에 기적도서관이 생겼다는 SNS를 보고 공주에 가기로 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도서관이 문을 열까 의심스럽지만, 인터넷을 검색하니 오늘 ‘영업 중’이라고 하네요. 시동을 걸고 카카오 내비를 켜니 자꾸 도로비를 내야 하는 고속도로로 가랍니다. 하지만 국도가 좋다는 걸 알기에 무시하고 공주에 접근해서만 카카오 내비의 말을 들었습니다. 대전 집에서부터 23Km, 멀지는 않은데, 도서관의 주위가 공사 중인 벌판 같네요. 멀리 아파트 단지가 보이지만 걸어서 접근하기는 어려울 듯,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건물로 접근합니다.

기적도서관이지만 다른 기적과는 달리 청소년과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다네요. 건물 규모는 3층인데 특히 도서관 건물로 디자인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도서관 입구에 가니 코로나 때문에 출입금지, 역시 인터넷과는 다르네요. 방역을 위해선 당연하죠. 도서관 이름은 “꿈든솔”, 정식 이름은 “공주기적의도서관”, 딸린 이름은 “공주시청소년꿈창작소”네요. 꿈이 들어 있는 소나무 마을에서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고 키워주는 도서관이라는 의미가 엿보입니다. 내부와 그 운영 모습은 천상 다음에 보기로 다짐하며 외부 사진만 몇 장 찍었습니다. 마음 놓고 걸어 다닐 수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차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운 도서관, 바로 인근에 공주대학교 문헌정보학과가 있는데, 정책결정자가 전문가의 의견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소 허탈감을 느끼며 다시 차에 올랐습니다. 동학사 입구 박정자에 차를 세우고 점심으로 새우, 주꾸미, 오징어, 홍합 따위의 해산물을 푸짐하게 넣고 끓인 해물 짬뽕을 사 먹었습니다. 값은 8천 원. 조개가 많이 들어있어 맛이 좋습니다. 계룡산도 식후경, 너에겐 익숙한 계룡산, 그 동쪽에 학들이 노니던 곳, 동학사로 갑니다. 주차요금 안 내는 안전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장료를 면제받고 천천히 계곡을 걷습니다. 연초록으로 물든 동학사 계곡, 좋은 차도 다닐 수 있는 좋은 길, 한 안내판에 “봄 동학, 가을 갑사”라는 말이 있네요, 봄에는 동학사 경치가 좋고, 가을엔 갑사의 경치가 좋다는 말인데요, 저는 또 의문을 제기합니다. 봄에 경치가 좋으면 가을에도 당연히 경치가 좋은 법 아닐까? 아니 가을에 경치가 좋으면 봄에도 당연히 경치가 좋지 않을까? 하하. 그래서 저 말은 논리에 100% 맞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저렇게 안내하면 동학사에는 가을에 오지 않고, 갑사에는 봄에 가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하하.

동학사 경내로 들어갑니다. 내일이 석가탄신일인데 절간이 비교적 조용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석탄일 축하 행사도 5월 23일 토요일로 미루었다네요. 인근 소방대장과 그 대원들이 한 여승의 안내를 받으며 경내를 시찰하는지, 구경하는지, 다른 관광객을 약간 방해하는 모습입니다. 아마 화재 예방 계획을 세우기 위해 시설 안내를 받는 것도 같습니다. 대웅전 앞 연등 접수처에 가봅니다. 등값이 10만 원이라네요. 5만 원이라면 하나 달고 싶었지만, 연금생활자인 당신에겐 너무 비싸네요. 그래서 “마음의 연등”을 생각하며 마치 따먹을 수 없는 포도를 포기하는 여우처럼 너의 생각을 합리화했습니다. 부처님은 ‘이심전심’이니까요. 부처님이라면 제 마음을 몰라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부처님은 절에서 연등을 팔아 돈을 벌라고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불교는 기복의 종교가 아니라 자기를 만들어가는 수행의 종교라는 어느 스님의 법문이 당신을 위로해 줍니다.

동학사 위 계곡을 감상하고 발길을 돌리는데 청기와 절집 쪽문이 열려 있습니다. 여승이 소방대원들을 계속 안내하고 있기에 열린 문 쪽으로 접근해 보았습니다. “거기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여승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너는 목으로 까닥 사의를 표하고 발길을 돌리며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해봅니다. “그럼 자기들은 거기 왜 들어갔지?, 문은 왜 열어 놓았지?”

동학사는 ‘여 중학교’입니다. 갑사는 ‘남 중학교’이고요, 여기서 중학교란 Middle School이 아니라 Monk School입니다. 한글 발음은 비슷한데 의미가 완전 다르죠. 하하, 그런데 의미론적으로는 Middle School이 더 좋아 보입니다. 인체도 허리가 튼튼해야 하듯이 인생 공부도 중학교 때 공부를 튼실하게 해야 전체 인생의 허리가 튼튼할 것 같아서입니다. 하지만 스님 학교는 그런 균형을 잘 잡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스님 학교에서 부처님의 인격을 기른다면 좋겠지만 과연 스님 학교에서 부처님의 인격을 기를 수 있을지, 스님들의 언행을 보면 알 수 있는 일 아닐까요? 혹시라도 스님들이 그들의 절집을 일종의 직장으로 생각하신다면, 그 생각부터 내려놓는 게 진정한 불자의 신행 태도가 아닐까, 집으로 돌아오며, 잔잔한 박인희의 노래를 들으며 너는 어이없는 생각에 빠졌습니다. 집에 오니 우편함에 구청으로부터 기초연금 결정 통지문이 와 있네요. 하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 한다.”, “나는 살아 있다. 고로 나는 연금을 탄다.” 나무 석가모니불 & 아멘. (석가 예수 탄생연도순). 2020.4.29.(수).

 

 

 

'수필/컬럼 >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처음 만난 특수반  (0) 2020.05.08
팥떡과 인생  (0) 2020.05.03
5월이 오면  (0) 2020.04.28
기본권  (0) 2020.04.24
동물의 문해력  (0) 2020.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