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지기 전에
봄은 꽃과 초록의 계절이다. 우린 봄이 되면 마음이 들뜬다.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그래서 ‘희망의 봄’이라는 옛말도 상투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오늘도 인적 드문 봄의 오솔길을 돌며 외로운 봄꽃들을 감상했다. 그런데 과연 꽃이 외로울까? 외롭다면 다 사람 때문이겠지. 사람이 드물면 사람도 외롭듯이 사람이 드물면 꽃도 외로울 것 같다. 봐 주는 이 없는 이 봄날의 꽃들. 10여 년 전에 나온 『울지마 꽃들아』라는 책이 생각난다. 비무장 지대 꽃들을 사진으로 담은 어린이 책이다. 그 책을 다시 보면 눈물이 날 것 같다.
너는 오늘 벚꽃 엔딩이라는 노래를 열 번도 더 들었다. 정말 긴 노래였다.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처음에 ‘그대여’가 다섯 번 나온다. 간절함인가? 끝날 때도 ‘그대여’를 다섯 번 얼버무리지만 흐지부지 결론은 없다. 벚꽃은 저 가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나 보다. 무산된 데이트 신청? 들으면 들을수록 벚꽃보다 그대를, 잡을 수 없는 저편에 여인을 그리워하는 것 같네. 에이, 남자답지 않군. 자꾸 들으니 가사가 재미없어진다. 유치해지기까지 한다. 아마 벚꽃이 끝날 무렵 바람에 흐트러지는 꽃잎을 바라보며, 고아한 인생의 꽃을 노래한다 해도 유치 찬란하기는 마찬가지일까?
요즘 ‘사회적 거리’가 또 하나의 유행어가 됐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자” 그래서 어떤 이는 그럼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라는 거냐? 사회생활은 인간관계인데 인간관계에 거리를 두란 말이냐, 이런 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말의 상황 물리적 인식을 배제한 해석 같다.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더라도 인간관계는 그대로 유지하자는 깊은 뜻을 읽는다면 그런 초보적 오해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말이 어려운 거지. 책방에 들러 『21세기 지성』이라는 책을 샀다. 현대 사상가 21명의 사회전망을 다루고 있다. 번역 책이라 말이 꼬여 있어 어렵지만 낭독하며 읽으면 그래도 그들의 남다른 생각을 건질 수 있을 것 같다.
벚꽃이 지기 전에 우린 다시 활력을 찾아야 한다. 학교에서 3주 차 강의는 동영상을 촬영해 홈페이지에 올리라는 메일이 왔다. 내일 모래 학교에 촬영하러 가야겠다. 최재천 교수의 오늘 신문 칼럼처럼, 마스크를 쓰고라도 “이제 대학은 개학을 하자.” 저 찬란한 벚꽃이 지기 전 우리들의 고아한 벚꽃 엔딩을 위해. 2020.3.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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