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에 놀란 것은
엊그제 3월 5일 목요일, 절기로 경칩이었습니다. 사전에 보니 경칩의 한자 구성은 놀랄 驚, 숨을 蟄이네요. 또, 그 뜻풀이는 “일 년 중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날 정도로 날씨가 풀린다는 날”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驚蟄’이라는 글자 구성에 개구리라는 말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한자 그대로 풀면 ‘놀라서 숨음’이라는 뜻 같은데요, 그래서 더 생각해 보니 단어의 의미 구성에는 언중의 생활 문화가 많이 가미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동양의 언어문화에서 오래 살아보지 않은 서양인이 한문을 많이 배웠더라도 단어를 구성하는 글자만 가지고는 그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경칩을 아무리 의역하더라도 “겨울에 숨어 있던 생물이 놀라서 땅 밖으로 나옴”으로 밖에 풀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정도 풀이도 동양에서 동양사람들과 함께 살며 문화를 체험해보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요즘 신종 코로나 감염병 확산으로 집안에만 칩거(蟄居)하고 있습니다. 봄이 왔는데도 경첩(驚蟄)을 맞은 개구리처럼 뛰어다니지 못하니 개구리가 참 부럽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리고 이런 게 자유의 속박이라는 생각도 스쳐 갑니다. 어제와 오늘 황금주말인데 종일 집에서 칩거하며 유튜브만 연거푸 들었습니다. 법륜 스님의 강의를 계속 듣고, 고승 열전을 계속 듣고, 스님의 강의에 빠져 참회의 눈물을 흘리다가, 기타를 만지다가, 침대에 누웠다가, 물을 마시고, 밥을 먹고, 서양 예술가곡과 오페라를 들어보고, 포크 송도 들어보고, 그래도 시간은 매우 더디게 갑니다. 시간의 속도는 언제나 시속 60분이지만 요즘의 시간 체감 속도는 시속 6분, 아니 그 이하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자정 무렵에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경칩에 개구리는 놀라 뛰어나왔지만, 우리는 개구리와는 반대로 놀라 숨어 버렸습니다. 驚蟄 문자 그대로 우리는 ‘놀라 칩거’하게 되었습니다. 청개구리도 경칩에는 기뻐 봄으로 뛰어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반대로 행동하는 전설 속 청개구리처럼 숨어 있어야 합니다. 너는 이 경칩의 느린 타임머신에 잘 적응하지 못합니다. 미루어 둔 원고를 쓸 좋은 기회인데도 너의 역마살 심리는 아직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습니다. 법륜 스님의 말씀이 너의 귀를 놀라게 합니다. 아침에 아무리 일어나기가 싫어도 옆에서 누가 총을 한 방 쏜다면 벌떡 일어날 것이라고, 아님, 누가 100만 원을 준다고 하면 벌떡 일어날 것이라고. 하하. 맞습니다. 내일은 동사무소에 가서 지난해 7월에 끊긴 기초연금을 다시 신청해야겠습니다. 2020.3.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