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과 방백
독백, 방백, 희곡이나 시나리오 등을 설명하는 교과서 글에서 많이 들어본 말입니다. 독백은 영어로 monologue, 방백은 영어로 a stage aside네요. 독백은 혼자 하는 말이니 일기도 독백에 들어갑니다. 40년 전(1980년) 너의 두꺼운 양장본 일기 노트에는 표지에 monologue라고 인쇄되어 있습니다. 혼자 하는 말이니까요. 그런데 방백은 관객에게는 들리나 극 중에서 상대에게 들리지 않는 것으로 약속한 대화, 즉 구시렁거림이랍니다. 그런데 이 구시렁거림은 실제 상황에서도 많이 있지요. 너는 오래전부터 혼자 살다 보니 간혹 지인 여성분들이 와서 집안이나 냉장고를 청소해준 적이 있는데요, 그분들은 청소하면서도 뭐라고 구시렁거렸던 걸 들은 적이 있지요. 하하. 그냥 아무 소리 않고 청소하면 더 고마움을 느꼈을 텐데요. 나이든 여성들은 꼭 잔소리를 하는 특징이 있더라고요. 하하.
너는 18세부터 23세 무렵까지 시골집에서 독학할 때 이웃 여성 어른들로부터 구시렁거림을 좀 당했습니다. 그땐 가난해서 어머니가 보따리장사를 하던 때였어요. 대전 도매시장에서 옷가지를 사다가 시골 동네를 돌아다니며 팔던 그 옷 장사, 그래서 너는 혼자 밥상을 다리에 끼고 공부하다가도 어머니가 오실 저녁 6시쯤이면 어머니의 옷 보따리를 받으러 노루골 고개로 마중을 나갔었지요. 그때 어머니의 고생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너에게 노동이라도 하란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그저 공부하라고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웃 아낙들이 너의 집 앞을 지날 때면 가끔 너를 나무라는 구시렁거림이 들려왔습니다. “어미는 보따리장사 하느라 목이 빠지도록 돌아다니는데 아들은 천 날, 만 날 틀어박혀 있으니” 참 불효자식이라는 말이었지요. 그래요. 네가 생각해도 그때 그랬어요. 정말 불효자식이었지요.
그런데 오늘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임희정이라는 작가가 쓴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 간다』라는 책을 발견하고, 소개 글을 읽어보니 너의 예전 상황과 별로 다르지 않은 부모님의 가난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계룡문고에 가서 그 책을 샀어요. 책을 보니 역시 부모님의 무식과 가난, 그 속에서 자란 효녀가 쓴 이야기네요. 말하자면 흙수저가 용된 이야기,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효성으로 발전한 이야기가 적혀 있네요. 아버지가 평생 막노동을 해서 자식 3남매를 키운 이야기, 어머니 순덕 씨의 알뜰한 살림 이야기, 가난해서 일찍 철들어 열심히 공부해 아나운서가 된 이야기 등이 너의 예전 성장기를 드라마로 보는 느낌입니다. 저자는 너의 자녀 정도 되는 1984년생이라는데 네가 겪은 1970년대 상황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너도 23세까지 방구석에 틀어박혀 공부했지만 그래도 철은 좀 들었었지요. 꼭 공직에 취업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말이죠. 그래서 일부 그 의지를 달성했었지요. 하하.
그 책을 읽으며 빨간 펜으로 너의 의견을 군데군데 적어갑니다. 저자에 대한 칭찬과 격려, 수정했으면 하는 어법 등, 하지만 저자에게 이 메모를 보낼 생각은 없어요. 너의 독서 습성이 그럴 뿐이지요. 그런데 이 책도 독백을 넘어서 방백으로 왔습니다. 일기는 독백이지만 책을 내는 순간 방백이 되는 거죠. 하하. 그래서 네가 쓰는 이런 글도 처음에는 일기, 즉 독백이었는데, 이제 독자들이 늘어나니 점점 방백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조심할 일이 있지요. 너무 독자를 의식하다 보면 진솔한 글이 되기 어렵다는 사실, 이걸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독자를 의식하는 순간 필자는 진솔함을 잊기 쉽다는 사실을 꼭 염두에 두고 글을 써야 하겠습니다. 2020.2.12.(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