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
발이 불편해 걷기운동을 중단하고 하루 집에 칩거했습니다. 이 방에 왔다, 저 방에 왔다. 컴퓨터를 치다, 책을 읽다, 우쿨렐레를 연주하다, 그래도 하루해는 길었습니다. 실정법적, 자연법적 모두 자유로운 몸인데도 발목을 다치니 신체의 자유가 제한됩니다. 은둔이란 이런 것인가, 칩거란 이런 것인가, 동안거란 이런 것인가, 요양이란 이런 것인가, 온갖 의문이 꼬리를 무는데, 그래도 사유의 자유는 마음껏 누렸습니다. 사유의 자유, 정신의 자유, 양심의 자유, 정말 대단한 자유입니다. 위대한 사람도, 명상가도 아닌데 생각은 우주를 유영하며 날개를 폅니다. 세종에 놀러 못 간 게 아쉽지만, 그래도 집에서 밥해 먹고, 배 먹고, 홍삼원 먹고, 소젖도 마시고, 친구가 온다기에 청소도 하고, 이런저런 일을 하니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집안에서의 걸음걸이는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삼신할머니가 도와주시나 봅니다.
그런데 2시가 넘어도 온다던 친구의 전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네가 전활 걸었는데요,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친척들을 만나 늦어져서 오늘은 못 오겠다며 그냥 올라가겠답니다. 그럼 진작 전화를 주시면 기다리지나 않을 텐데, 하하, 좀 허탈? 결혼식장에서 여러 사람 만나니 정신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네가 걷기가 불편하다니까 너의 발 건강을 배려한 것 같기도 하네요. 그래서 또 우쿨렐레를 잡고 일어섰다 앉았다 하며 연주를 해 봅니다. 유튜브에서 보고 새로운 연주법을 따라 해 봅니다. 아르페지오 비슷한데 좀 색다른 연주방법, 다운 업, 다운 업인데 더 경쾌한 소리가 나네요. 네가 연주할 수 있는 모든 곡을 그 연주법으로 쳐보았습니다. 청량감이 있어 좋습니다. 친구가 안 오는 바람에 새로운 연주방법 하나 배운 셈, 은둔도 제법 생산성이 있어 보입니다. 가끔은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 네 할 일을 즐기는 것, 이것도 우리 삶의 균형유지에 필요한 것 같습니다. 2020.2.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