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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우상

우상

우상은 아이돌(idol)이지만 허위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습니다. 실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학문의 연구에도 우상을 경계하라는 고전적 고언이 있습니다. 인간이 파악하는 모든 인식은 허깨비일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영국의 경험론 철학자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의 말씀이죠. 그는 『신기관(新機關), Novum Organum』 이라는 책에서 인간이 지식을 추구할 때 범하는 오류의 심리적 원인을 논의하면서 그 비유로 ‘우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답니다.

다음 백과사전에 보니 이렇게 나오네요. “첫째, 종족의 우상은 인류에게 공통적인 지적 결함으로 예를 들어 사람들은 어떤 탐구 영역에는 실제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질서가 있다고 가정하는 지나친 단순화 경향이 있다. 둘째, 동굴의 우상은 개인의 지적 특성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사물들 사이의 유사점에 더 주목하고 또 다른 사람은 차이점에 더 주목한다. 셋째, 시장의 우상은 언어와 관련된 오류이다. 예컨대 일상 언어에서 고래와 물고기처럼 기본적으로 다른 것이 비슷한 것으로 분류되는가 하면, 얼음·물·수증기같이 기본적으로 비슷한 것이 다른 것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넷째, 극장의 우상은 잘못된 철학 체계를 말한다. 베이컨은 감각의 역할을 무시하는 인문주의자들의 철학 체계를 그 예로 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과학은 직관적으로 자명한 전제에서 결론을 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베이컨은 그 전제들이 자명하지도 않고 반박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좀 어렵게 들릴 수도 있는 설명이지만 사람이 가지는 인식 오류가 다 포함되어 있네요. 이해하기 쉽게 고쳐 써보면 첫째 ‘종족의 우상’이란 인간이라는 생물 종이 갖는 감각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감각 중에서 후각은 개만도 못한데요, 그래도 우리의 감각으로 냄새를 판단할 수밖에 없지요. 둘째 ‘동굴의 우상’은 우리는 누구나 편견을 갖고 있는데 그로 인해 크고 작은 오류를 범한다는 것입니다. 편견은 고집일 수도 있는데 편견이 지나친 사람과는 대화가 잘 안 통합니다. 셋째, ‘시장의 우상’은 다른 사람이 가는 대로 따라간다는 겁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도 있듯이 저잣거리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것입니다. 자기 판단을 하지 못하는 거죠. 넷째, 극장의 우상은 가설 설정, 조작 등에서 일어나는 연구방법의 오류인데요, 연극이나 영화는 작가가 쓰는 희곡이나 시나리오를 토대로 한 가상적 이야기인데요, 그 시나리오가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잖아요. 연구는 시나리오를 쓰는 게 아니지만, 그래도 어떤 연구의 틀, framework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framework를 만들 때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네요. 네, 연구자가 꼭 새겨들어야할 말입니다.

이번 학기엔 주 10시간 강의를 맡게 되었습니다. 새해 복을 많이 받은 셈이지요. 하하. 그래 첫 시간에 무엇을 이야기할까 생각하다가 이 오래된, 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이 베이컨의 명언을 한번 써먹어 볼까 생각 중입니다. 2020.1.25.(토). 설날 아침.

 

주석

1. organum [ɔ́ːrgənəm] ①중세 유럽의 다성 음악, ②다성 음악 양식 ③방법론적 원칙

2. 신기관(新機關). 프랜시스 베이컨 지음, 진석용 옮김, 한길사. 2016(1쇄 2001년)

『신기관』은 제1권과 제2권으로 구성되어있다. 베이컨은 1권을 ‘우상 파괴 편’으로 제2권을 ‘진리 건설 편’으로 부르고 있다. 제1권에서는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널리 알려진 경구에서 시작해 인간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는 편견들, 즉 네 가지 ‘우상’을 하나하나 논박하고, 자신이 제창한 귀납법의 개요를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중세를 뚫고 솟아나는 근대정신의 파릇파릇한 싹을 만나게 된다. 제2권에서는 우상에서 해방된 인간의 지성이 과학적 발견을 위해 걸어야 할 길, 즉 ‘참된 귀납법’의 구체적인 예를 보여주고 있다. 현대 과학이 달나라를 정복하고 빛의 속도에 육박하기까지 과학사의 위인들이 얼마나 고된 노력을 했는지, 어떤 관점으로 과학을 인도하려 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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