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편에서 법(法)을 찾아보니 ‘법법’이라고 써 놓았다. 그러나 ‘법법’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알기가 어렵다. 이런 식의 풀이는 종(鐘)은 ‘종종’, 권(權)은 ‘권권’, 권(卷)은 ‘권권’ 하는 것과 같아서 ‘법(法)’을 찾기 전에 먼저 ‘법(法)’을 알고 있어야 하고, ‘종(鐘)’을 찾기 전에 먼저 ‘종(鐘)’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법(法)’의 뜻을 아는 사람이 누가 옥편에서 ‘법(法)’을 찾을 것이며, ‘종(鐘)’의 뜻을 아는 사람이 무엇 하러 옥편에서 ‘종(鐘)’을 찾을 것인가?
사전이란 모르는 글자나 단어의 뜻을 알려주는 선생님인데 선생님께 ‘여쭈어’보아도 뜻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니 답답하다. 한자 사전이 아닌 국어사전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사전에서 ‘한글갈’을 찾으면 ‘한글’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만 ‘갈’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백과사전에는 ‘한글갈’에 대한 설명이 나오지만 역시 ‘갈’이 무엇인지 풀어놓지 않았다. 그래서 한글을 잘 ‘갈고’ 닦아 놓은 책이라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인지 잘 알 수가 없다. 이 경우 ‘한글갈’이라는 책을 구해 잘 읽어보아야만 그 정확한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법(法)’을 ‘이치’, ‘근본’, ‘지키다’로 풀이해 놓는다면 그 의미가 확실해진다. “법은 사상(事象)의 근본이고 이치(理致)이며 이러한 이치를 ‘지키다’의 뜻이 있다.”고 설명하면 배우는 사람들은 그 뜻을 금방 알아차려 “법이란 사물과 현상의 돌아가는 근본이고 이치이므로 모든 법을 잘 연구하고 따르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하고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한글갈’의 경우도 “최현배선생이 한글을 연구하여 잘 ‘갈고’ 다듬어 놓은 책” 정도로 기본적인 의미 설명을 해 놓는다면 ‘어린 백성’들이 그 뜻을 알아 공부를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울 종로의 탑골공원 앞 길거리에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돌이 있다. 사전에 찾아보니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創造)한다는 뜻으로, 옛것에 토대(土臺)를 두되 그것을 변화(變化)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根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임”으로 풀이되어 있다. 그런데 옥편의 ‘법(法)’자 풀이인 ‘법법’, ‘방법 법’만 가지고는 이러한 해석을 도출하기가 참 어려울 것 같다. 필자는 사전을 찾아볼 때마다 우리 옥편과 사전들의 뜻풀이가 좀 더 현대어에 맞게 개정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는다. 그건 그렇고...
이 글을 시작한 의도는 컴퓨터학원에 다니면서 노인들이 많은 종로3가 탑골공원 앞을 지나다가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돌에 새겨진 글귀를 보고 의미가 좋은 것 같아 더 좀 생각해보려는 것이었다. 이제 본래의 의도로 돌아와서,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을 음미해보니 위의 사전풀이에서처럼 ‘옛것을 지켜 근본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나가야 한다.’ 는 역사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아는 온고지신(溫故知新)과도 같은 의미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온고지신의 의미를 다시 음미해보았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더 정확히는 옛것이 그렇게 된 까닭)을 익혀 깨닫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로운 것을 앎. 다시 말하면, 옛 학문(學問)을 되풀이하여 연구(硏究)하고, 현실(現實)을 처리(處理)할 수 있는 새로운 학문(學問)을 이해(理解)하여야 비로소 남의 스승이 될 자격(資格)이 있다는 뜻임”
위의 설명은 사전의 풀이에다가 필자의 생각(괄호 안에 있는 설명 : ‘더 정확히는 옛것이 그렇게 된 까닭’)을 좀 보충해본 것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에서의 고(故)는 단순한 옛것이 아니라 옛 것이 그렇게 된 ‘이유’, ‘까닭’을 의미하는 고(故)이기 때문이다. ‘법고창신’이나 ‘온고지신’이나 의미는 유사하지만, 중요한 것은 ‘근본(根本)을 지켜나가는 것’, ‘선인들의 지혜와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잘 살펴, 덤벙거리지 말고 신중하게 새로운 일을 만들어야 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공부를 할 때도 조금 아는 것 가지고 너무 덤벙대지 말고, 선행연구를 잘 살펴야 하며, 정치를, 교육을, 경영을...,할 경우에도 선인들의 지혜를, 선인들의 의도를, 법도를, 이치를 잘 살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대로의 법칙을 하나 만들었다. 우선 역사의 법도를 아는 것, 자연의 이치를 아는 것, 사상의 근본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들어 보았다.
“어떤 사람도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법(法)을 아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다. 법을 아는 사람은 그의 총명한 지혜가 온 세상을 향해 밝게 열려있기 때문이다.”
“No one could know everything. But he or she who can see natural law could know everything because his or her wisdom is brightly opened to all worlds.”
문법(文法)이 틀린 곳이 있으면 누가 좀 고쳐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아직 ‘법(法)’을 잘 모르니 세상 모든 것을 지혜롭게 알 수는 없는 그런 사람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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