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산책
아들 집에 가서 목요일 하룻밤을 자고 금요일 정오에 며느리 집에서 나왔습니다. 사실은 그 집이 그 집이지만요. 하하. 대전으로 이사하여 안양으로 열차 통근을 하다 보니 아들 집에 갈 시간적 여유가 많지는 않은데요, 그래도 손주 보러 한달에 한번은 가는 게 할아버지의 도리입니다. 이번 학기 아들 집 방문일은 목요일이 가장 좋은데요, 저녁 8시에 강의가 끝나기 때문이지요. 그 시각에 대전으로 가는 것보다 영등포로 가는 게 신체적, 경제적으로 유리하니까요. 그럼 매주 목요일 날 손주 보러 가면 더 좋지 않겠느냐고요. 네, 그렇지요. 하지만 너무 자주 가면 아들 며느리가 불편할 것 같아 한달에 한번을 선택했습니다. 하하. 이게 아마 현대 노인의 상식일걸요.
아들 집에서 나와 한 150미터쯤 걸어 보라매역에서 전철을 탔습니다. 낮이라 그런지 자리가 넉넉하네요, 보라매, 신대방삼거리, 장승배기, 상도, 숭실대 입구, 숭실대 입구에서 내렸습니다. 서울대 가는 교통편은 잘 모르지만, 숭실대에서 서울대는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지요. 숭실대 역에서 봉천동 방향으로 나와 두리번거리니 상도동 방향으로 한 15미터쯤에 버스정류장이 있네요. 그리고 마침 서울대 캠퍼스 안으로 들어가는 5511번 초록 버스가 오네요. 운수 좋은 날입니다. 참고로 버스는 광역(빨강 색), 간선(청색), 지선(초록색), 마을버스(초록 또는 노랑) 이렇게 구분된다네요. 광역버스는 시도 경계를 넘어 다니고 간선버스는 시내 큰 도로, 지선은 작은 도로, 마을버스는 마을 구석구석을 도는 버스랍니다. 하지만 이들 간 구간이 중복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너는 2011년부터 서울대를 다닙니다. 평생 학생이라는 신분을 가지고요. 하하. 예전에 못 다닌 서울대 이생에 있을 때 실컷 다녀보려고요. 오늘은 오후 2시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서 역사강의가 있습니다. 그런데 강의 시간까지 1시간 반 여유가 있기에 네가 늘 내리는 경영대 앞에 내리지 않고 그대로 타고 캠퍼스를 한 바퀴 돌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캠퍼스 내에도 버스 종점이 있네요. 일단 종점에서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요금 카드를 찍고 다시 타야 규장각으로 갈 수 있네요. 그래서 버스비도 아끼고 산책도 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로 했습니다. 사실 너는 토끼도 새도 잡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일석이조(一石二鳥)도 싫어합니다. 그들도 귀한 생명이니까요.
걸었습니다. 아직 가을이 남아있어 캠퍼스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공기도 좋고, 학생들도 씩씩하고, 어떤 학생들은 교수님에 대하여 애교 섞인 비판도 하면서, 아, 이건 학생들이 큰 소리로 깔깔대며 말해서 그냥 너의 귀에 들려온 것뿐입니다. 공대를 지나 농대를 지나, 아하, 농대를 지나니 농촌지도소장으로 은퇴한 너의 단짝 친구가 생각나네요. 과학영농도 생각나고, 농자천하지대본도. 농업이 없으면 먹고살 수가 없지요. 하하. 거리가 꽤 멀어 다리가 아프려고 하네요. 그럴 때마다 사진을 찍으면 다리가 안 아프다는 건 예전에도 알고 있던 상식이지요. 땀이 약간 나는 산책을 마치고 규장각에 들어서니 강의 시작 15분 전, 졸면서 강의를 듣고 다시 수원역에서 18시 46분 무궁화를 탔습니다. 하하. 2018. 11. 18(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