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기회가 되면 해외여행을 좀 다녀볼 생각에서이다. 50이 넘도록 외국엘 한 번도 가보지 않았으니 내가 생각해도 정말 너무했구나 싶다. 외국에 대한 사정은 역사서나 지리서, 유명 인사들의 기행문, 관광안내책자, 텔레비전프로그램을 통해서 ‘들은풍월’이 전부다. 그러면서 필자는 ‘도서관의 역사’ 강의시간에 메소포타미아문명, 이집트문명, 그리스문명, 인도문명, 황하문명을 천연덕스럽게 이야기 해왔으니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의 느티나무 사정을 이러쿵저러쿵 개굴거린 것’ 같아서 매우 계면쩍다.
그래서 오늘 내친김에 여권용 사진부터 찍었다. 사진관애서 사진을 찍은 지도 오래되어서 사진관에서의 행동도 부자연스러웠다. 사진사가 카메라를 조종하여 촬영스위치를 누르는 데 뭐가 그리 긴장될 게 있다고, 불빛이 번쩍하면 눈이 깜박하고 고개가 약간 ‘경련’을 하는 듯 매우 어색했다. 몇 번을 시도한 끝에 사진이 찍혔다. 그리고 30분 만에 사진 8장을 받았다. 그런데 또 촌스럽게, “필름을 주실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요즘은 디지털이라 필름을 안 쓴다.”는 답이 왔다. 아! 실수! 그러나 마무리는 ‘멋있게’ 했다. 가지고 다니는 USB에 사진 원판을 담은 것이다.
사진을 찍은 후에는 바로 서점으로 갔다. 여행기를 하나 사서 읽을 생각이었다. 이 책 저 책 좋은 책이 많이 보이는 데 그 중에서 ‘인도기행’이 눈에 띄었다. 엊그제 인도를 ‘여행 1순위’로 생각하고 있다는 글을 썼는데, 그 생각은 서점에 가서도 변하지 않았다. 법정스님께서 수려하고 적나라하게 쓰신 여행기가 천연색 사진과 함께 실려 있어서 ‘전문사서로서의 순발력’을 활용, 즉시 ‘도서선택’을 했다. 비록 20여 년 전에 쓰신 글이라 최신성은 없지만 대륙(大陸)은 그렇게 쉬 변하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으니 상관할 바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계속 ‘인도기행’을 읽었다. 처음에는 캘커타시의 짐승과 어울려 사는 사람들의 ‘짐승 같은 삶’의 모습들이 그려져 있었다. 교통이 불편한 것은 두말 할 것 없고, 생활환경은 퀴퀴하고 찌릿한데, 역겨운 ‘인도 냄새’(스님은 인도 향의 냄새를 이렇게 표현했다.)가 가는 곳마다 풍긴다 했다. 그러나 한 그루 나무숲 둘레가 420미터가 넘는 ‘반얀나무’가 아름다운 수행 처를 제공하는데, ‘죽음을 대기하는 집’에서는 뼈골이 상접한 사람들이 하루에도 두세 명씩 자신의 관 짜는 못 망치소리를 들으며 죽어가고 있어 스님으로서도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되신 것 같았다. 그러데 한 가지 특이한 대목은 인도사람들은 가난하면서도 걱정이 없는, 있는 그대로를 그렇게 받아들이는 매우 종교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짐승과 자연과 하나 되어 살면서, 삶과 죽음도 하나인 것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것이 ‘인도기행’의 앞부분에서 얻은 나의 독후감이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왔다. 감정이 매우 가라앉아 있었다. 지금 내가 고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 고생’은 ‘행복한 고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쾌적한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수 백 년 살 것처럼 아귀다툼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과연 인도인들은 무어라 평가할 것인가? 정말 인도에 먼저 가보아야겠다. 기행문만 읽어도 이렇게 마음이 달라지는데 인도를 체험하고 오면 정말 인생이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나의 보금자리로 들어왔다. “아이구, 편한 거, 등 따시고 배부르니 내 팔자가 상팔자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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