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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좋은 책, 지혜의 공간'

   위의 제목은 상상속의 출판사 명칭이다. 필자가 가상해서 지어 본 것이다. 이름이 너무 길긴 하지만 그 의미가 좋은 것 같아서 그냥 길게 붙여보았다. 출판사라고 하면 좋은 책을 내야하는 것은 당연하고, 좋은 책을 내되 ‘시공간의 지혜’를 불러 모아 내겠다는 ‘경영자의 의지’가 담겨 있다.

  출판사는 진리의 말씀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다. 돈벌이를 위해서 출판을 한다면 출판의 진정한 의미를 그르칠 수 있다. 필자는 “사람이 책이고 책이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이전의 한 글에서 주장한 바 있다. ‘사람이 책’이라는 필자의 가정이 옳다면 ‘좋은 사람’은 ‘좋은 책’과 동일하다. 따라서 아기를 출산할 때 좋은 이기를 낳아야 하듯, 책을 출판할 때도 좋은 책을 ‘낳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가 된다.

  세상에는 고대로부터 많은 책이 탄생되어 왔고, 지금도 날마다 탄생되고 있다. 그런데 그 책들이 다 좋은 책인지는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 출판사에 좋은 책을 판단할 줄 아는 지혜롭고 유능한 ‘학자’들이 있다면 좋은 책을 판단하여 건강한 ‘옥동녀, 옥동자’를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워낙 출판사가 난립하다보니 그러한 기대를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부분의 출판사가 상업주의에 빠져 어떻게 하면 돈이 되는 책을 낼까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 것 같다.

  좋은 책을 내기 위해서는 능력 있는 학자 출판인들이 저자의 원고를 잘 읽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 같은데, 우리의 출판사 직원들은 “잘 팔릴까, 안 팔릴까”부터 점치고 있는 ‘족집게 도사’ 역할만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하기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성이 없으면 사업을 지탱하기 어렵기 때문에 경제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좋은 책을 내는 것이 출판사의 본질적 사명이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베스트셀러라고 소개되는 책들을 보노라면 과연 그 책들이 좋은 책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저자나 작가의 인기, 기획출판사들의 대대적인 신문광고, 기타 여러 가지 ‘물밑활동’들이 베스트셀러를 만든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소문이 나 있다. 반면에 각 분야에 꼭 필요할 것 같은 입문서나 학술서적들은 서점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다. 출판 된지 몇 달간은 서점에 1권정도 꽂혀 있다가 6개월 정도 지나면 아예 서가에서 사라지기 일쑤이다. 직원에게 물어보면 예약주문만 받는다고 한다. 

  서점의 이러한 영업 전략은 판매량에 기준을 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광고도 안 하고 서점에도 꽂혀있지 않는 책들은 독자의 손에 갈 수 있는 길이 봉쇄되어 절판의 최후를 맞는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각 분야의 서적들이 골고루 출판되고 서점으로 나와 저마나 개성 있는 얼굴로 독자의 선택을 기다릴 수 있게 해야만 학술문화의 대중화가 이루어질 텐데, 필요성을 느끼고 서점에 가도 찾는 책이 진열되어 있지 않고 예약으로만 주문할 수 있다면 누가 번거롭게 이중걸음을 하려고 하겠는가?

  최근에도 필자는 대형서점에 가보았다. 전공이 전공인지라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문헌정보학분야의 책이 있는 서가인데, 이번에 가보니 서가의 면적이 전에 비해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기본적인 문헌정보학서적들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지금은 학생들이 전공 선택을 하기위해 정보를 찾고 있을 시기인데, 서가를 이렇게 축소하고 책도 구색을 갖추어 놓지 않았으니 출판사를 원망하기보다는 차라리 대형서점이 원망스러워졌다. 서점이 이렇게 장사를 하니 출판사가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돈이 안 되는 책을 낼 수 있겠는가?

  나는 출판사의 명칭을 ‘좋은 책, 지혜의 공간’ 으로 구상하면서 좋은 책만을 내고 싶다는 희망을 가슴 한가득 품었으나 서점의 그와 같은 영업행태를 보고는 나의 희망이 참 순진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좋은 책을 내고 싶은 욕심을 쉽게 저버릴 수 없으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떤 방법으로든 지혜로운 영업 전략을 짜보아야 하겠다. 학자도, 출판사도, 서점도, 독자도 모두 윈, 윈, 윈, 윈 할 수 있는 좋은 묘안이 없을까? 역시 저 광활한 공간속에서 지혜를 불러 올 수밖에...(2008.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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