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밥미팅
찰밥 미팅을 가졌다. 언제? 삼일절인 오늘. 어디서? 너의 도서관에서. 왜? 정월 대보름 이브(EVE)라서. 어떻게? 응암동 사는 여동창이 찰밥을 한 솥 해가지고 왔지. 할머니 아니랄까봐 미니 손수레를 끌고, 전철을 타고. 하하.
너의 동창들은 충청도 아줌마 아저씨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이 하나같이 푸근하다. 오늘도 추억의 옛 이야기를 꽃피웠다. 다 소년 소녀 시절 청순하고 풋풋한 이야기들이다. 만날 때마다 이야기는 비슷하지만 친구들의 얼굴엔 파안대소가 터진다. 하지만 나이 탓인지 단박에 또 잊어버린다. 그래서 다음번에도 그 이야기들이 새로운 이야기처럼 들리겠지. 하하.
너는 오늘 남 동창 셋이 군복을 입고 찍은 사진 한 장을 주인공 친구에게 선물했다. 해병 장교로 간 친구의 코트를 네가 입고, 그 장교님은 그냥 코트 없는 군복을 입고, 또 오늘 온 친구는 육군상병 복장을 하고. 하하. 그때 군대도 안 갔던 네가 마치 대장처럼 가운데 서서 찍은 시진이다. 그런대로 추억이 아련한데 친구는 기억이 잘 안 난다며 무척 좋아했다. 확대 복사하여 간직하겠단다. 하하.
너의 재경동창들은 하나같이 육두문자를 쓰지 않아 참 좋다. 하지만 요즘은 안 쓰는 예전 용어가 튀어나올 땐 배꼽을 잡지 않을 수 없다. 지난번엔 오늘 찰밥을 해온 여동창이 ‘청병’ 이라는 말을 사용해서 한바탕 웃었다. 아버지 심부름으로 막걸리 청병 한 병을 사가지고 집에 가다가 훌쩍 훌쩍 마셔봤다나. 하하. ‘청병’은 큰 소주병으로 1되들이 파란 병인데 오늘날엔 됫병이라고 하지.
찰밥미팅 3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찰밥도 남고, 묵도 남고, 그 여동창이 찰밥은 너 홀아비가 두고 먹으라고 따로 서너 그릇이나 별도로 가져왔는데 같이 먹던 밥까지 많이 남았다. 그 뿐이 아니다. 김치, 김, 씀바귀무침, 양념간장, 그리고 남동창이 부럼으로 사온 호도, 밤, 땅콩, 실버용 물렁한 곶감까지 한 3일은 넉넉히 먹겠다. 너는 가락동 전철역까지 친구들을 배웅하며 3일 동안 일용할 양식을 주신 동창들께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부디 건강들 하고 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고 진심어린 덕담도 전했다. 그런데 신나게 먹고 노느라 사진도 한 장 못 찍었네. 하하. 2018. 3. 1(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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