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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가락시장

가락시장

 

다섯 시 반에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영하 13, 칼바람이 녹록치 않은데 그래도 훈기어린 먹거리시장에 들어가니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너는 일단 저녁 메뉴로 해장국을 시켰다. 그리고 반찬이 나온 다음 소주를 한 병 시켰다. 이렇게 추울 때는 속 난로와 겉 난로를 다 피워야 한다. 요즘은 서울 날씨가 추워서 남극 세종기지에 근무하다 온 사람이 남극으로 다시가고 싶다고 너스레를 떤다고 한다. 하하. 아무튼 춥긴 춥다. 요즘은 매일 영하 10도 이하다.

 

식사를 한참 하고 있는데 그 먹거리시장 분위기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장사는 안 되고 자기들끼리 술 먹는 분위기랄까, 좌석을 이리저리 배치하고 회를 사오고 삼겹살을 사오고, 아마 그 동네 상인들인 것 같은데 그 자리를 주선하는 바람잡이 여인도 있는 것 같았다. 다 아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남녀 간의 스킨십도 자유로워 보인다. 스킨의 자유권인가보다. 요즘 헌법 개정안에서나 역사교과서 작성지침에 기존의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고 그냥 민주주의라고 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너는 구세대라 그런지 그것 참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다. 우리가 태고 때부터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 자유권적 기본권, 신체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 학문의 자유,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그걸 뺀다고 하니 기가 막힌다. “자유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각설하고, 너는 그 이상한 자유 분위기를 뒤로하고 시장 투어를 했다. 1층 어물시장, 그 규모가 마치 부산 자갈치시장 같다. 자유를 잃은 수많은 바다 고기들의 시체가 즐비한데 활어들도 구속된 자기들의 운명을 모른 채 헤엄치고 있었다. 너는 평소 회를 좋아했지만 그 시체들을 보니 질려버린다. 살생의 현장, 자유를 억압하고 생물을 죽이는 저 아귀지옥. 너는 곧 그곳을 탈출했다. 화물용 큰 승강기를 타고 2층으로, 그리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먹고, 마시고, 떠들고, 희롱하고 인간들의 작태가 예사롭지 않다. 저렇게 매일 술을 마셔도 사람들이 잘 산다는 게 놀랍다. 하기야 알코올 중독 노숙자들도 보면 언제나 그 자리에서 미친 듯 살아 있지. 악취를 풍기며, 쓰레기뭉치 같은 짐을 옆에 잔뜩 두고 괴성을 질러댔지. 인두겁을 썼지만 인간의 모습은 아니었지.

 

너는 다시 야채 청과물 시장에서 어떤 아주머니께 몇 시에 장이 서냐고 물어보았다. 열시라고 했다. 밤 열시. 가락시장은 야간 시장이다. 선비인척 하는 너의 생활과는 정 반대다. 밤에 활동하고 낮에 잠자고, 아니면 술 먹고 그게 상인들의 생활이란다. 그래도 그들은 돈을 번다. 자고로 월급쟁이는 돈을 못 벌어도 장사는 돈을 번다고 들었다. 장사도 나름이겠지만 쌀장사라도 해야 돈을 번다고 했다. 그런데 너의 집은 영 아니었지. 어머니도 옷 보따리장사를 해보셨지만 언제나 본전도 못 찾았다. 하하. 보따리를 이고 고개를 넘고, 그래도 목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던 그때, 그래서 너는 어머니의 그 고생을 너무나 슬퍼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다니시던 그 길을 따라가며 너는 통곡을 했었다. 어머니, 어머니, 죄송해요, 어머니! 그래도 우리는 자유가 있었기에 살았다. 오늘 삶의 면면을 다시 한 번 보고 느끼며 아직도 어리석은 너의 시대를 규탄한다. 내일은 너의 마음에 자유의 촛불을 들고 청주에 직지를 보러갈 예정이다. 이것은 너의 자유권적 기본권이다. 2018.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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