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 도선사에서
오늘 문득 소귀에도 경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우이동 인근에 있는 절 때문이다. 우이동에 거주하는 유학자나 스님들은 자연스럽게 소귀에 경을 읽는 셈이다. 우이동(牛耳洞)이므로. 하하. 또한 불교적인 마인드에 의하면 스님들은 축생에게도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불경을 읽어 주는 것이 마땅할 것 같다. 우리도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잘 못 알아듣지. 감성적으로 보자면 짐승들은 사람보다 훨씬 착하다. 맹수는 예외이지만. 그들은 짐승으로 태어난 죄로 인권을 누리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순진하게도 인간의 말을 듣고, 인간에게 봉사하다가, 육신마저 인간에게 다 바친다. 그래서 인간을 피해다니기도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들이 더 착하다고 믿고, 절에 가서 복을 빌고, 왕생극락과 인도환생을 빈다. 소가 웃을 일이지.
신설동으로 가서 한 달 전부터 운행을 시작한 우이경전철을 타 보았다. 경전철이라는 말 그대로 소규모 동차다. 소위 ‘동가리 동차’, 2량 단위로 운전기사 없이 운행하고 있다. 완전 자동화된 셈. 전철은 궤도가 있으니 무인화도 그만큼 쉬울 것 같다. 궤도 없이 일반도로를 달리는 무인 자동차는 내달부터 판교에서 시범 운행한다고 한다. 그것도 기대는 되지만 걱정도 좀 된다. 자동 기계도 고장이 나는 경우가 더러 있으므로. 운전석엔 사람이 타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겠지. 그러고 보니 우리들은 지금까지 자동차가 아닌 수동차를 탄 셈이네. 하하.
우이경전철은 신설동역에서 우이역(도선사입구)까지 열 세 정거장으로 약 30분이 소요되었다. 전철역엔 주변 관광지가 소개되어 있는데 오늘 너는 도선사에 주목했다. 도선사는 신라 때 도선국사가 창건 했다니 화계사보다 역사가 훨씬 긴 셈이다. 우이경전철엔 무임승차 실버승객들이 많다더니 정말 그랬다. 너도 그 중 한 사람이지. 엊그제 뉴스에서 우이경전철을 한 달 운행한 결과 적자라고 나왔다. 무임승차 비율이 높은 게 그 원인이란다. 다소 미안함을 느낀다. 대책이 있어야겠다.
우이 역 2번 출구로 나오니 도선사에서 신도들을 위해 무료로 운행하는 관광버스가 있었다. 비 신도는 타지 말라는데 그냥 탔다. 신도증을 검사하지는 않았다. 제법 가파른 길을 꼬불꼬불 올라 버스에서 내리니 앞에 보시함이 있다. 너는 버스비 명목으로 1천원을 넣었다. 절 입구 주차장엔 차량들이 꽉차있고 도로변에도 차들로 넘쳐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참 사람들 대단하군.
사찰 경내로 들어가니 마치 경동시장처럼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다. 군고구마 장사도 있고, 쌀과 양초 등 공양물을 파는 상점도 있다. 좀 더 올라가니 절 마당 하늘이 온통 연등으로 장엄되어 있다. 대웅전 계단 아래엔 촛불 공양을 할 수 있는 유리 상자들이 1열로 설치되어 있어 사람들이 물위에 촘촘 박혀 있는 송곳 촛대에다 촛불을 꽂고 있다. 마치 대구 팔공산 갓 바위 분위기다. 더 위로 올라가니 정말 팔공산 갓 바위에서처럼 사람들이 긴 방석을 깔고 마애불을 우러러 계속 절을 올리고 있다. 저마다 소원 성취를 비는 것 같다. 앞서 호국이라는 글자를 절 기둥 어디서 보았는데 그 기도하는 분들의 마음속에 호국불교의 정신이 좀 깃들어 있기를 마음으로 기도했다.
사찰을 요리조리 살펴보며 내려오다가 운 좋게 공양간을 만났다. 오후 2시인데도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너도 줄을 섰다. 마치 한 달 전에 본 부산 범어사 공양간 분위기다. 대접에 밥, 김치, 무생채, 콩나물, 고추장, 배추 된장국. 메뉴가 범어사보다는 나은 것 같다. 된장국도 구수하고 맛있다. 11시에 잠실에서 햄버거를 먹었는데 3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그 밥 그 국을 다 비웠네. 공양간에서는 사람들의 욕심을 좀 볼 수 있었다. 더 많이 먹으려는 그 탐욕. 하하. 너는 솔직히 그런 식탐은 적다. 그냥 주는 대로 먹는다. 아니 좀 더 적게 달라고도 한다.
내려올 땐 계곡과 숲을 감상하기 위해 걸었다. 비탈길이라 다리가 울려 아플 지경이다. 숲, 바위를 감상하며 내려오는데 계곡엔 물이 적다. 전번 진관사 계곡에도 물이 없었는데 북한산 계곡은 동에도 서에도 물이 적은 가보다. 계곡물이 좀 콸콸 내려오면 좋을 텐데, 그래야 물소리 새소리가 어울릴 텐데. 그러고 보니 새소리도 별로 없는데 까마귀소리가 좀 크게 들린다. 요즘은 뻐꾸기보다 까마귀가 조정에 대고 간언을 좀 하면 어떨까. 하하. 아, 아, 똑바로 좀 하시오. 똑바로. 안보, 경제, 일자리 좀 똑바로 하라 그 말이요. 아, 아.
다시 우이역으로 내려와 경전철을 탔다. 절에서 밥을 잘 먹은 탓에 아무 것도 사먹지 않고 신설동, 신설동에서 성수, 성수에서 잠실, 잠실에서 문정, 이렇게 오늘도 세상과 정다운 사교를 했다. 그런데 마음에 여운이 남는다. 도선사에 사람이 저리 많은 걸 보니 수입이 참 많을 것 같네. 사찰이 마치 시장 같으니. 그래서 야단법석인가. 사찰이 기복을 뛰어넘는 좀 진정한 불교정신을 현출하는 사찰이면 참 좋겠는데. 친구한테 배운 현출, 오늘도 잘 써먹네. 하하. 2017. 10. 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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