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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사람의 정신

사람의 정신

사람의 정신은 한없이 높기도 하고 한없이 낮기도 하다. 한없이 선하기도 하고 한없이 악하기도 하다. 한없이 순수하기도 하고 한없이 위선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전부터 평화를 위한 율령과 윤리기준이 필요했나보다.

오늘 무료한 일요일, 종로 3가 인사동에 구경 가다가 전철에서 범상치 않은 장면을 목격했다. 맞은편에 80세도 넘어 보이는 치아가 다 빠진 할아버지와 60대 중반의 얼굴이 동굴 넓적 팽팽한 할머니가 앉아 있는데, 처음엔 서로 모르는 사람 같았다. 할머니가 목줄에 지갑을 달고 있었는데 그 할아버지가 지갑을 소재로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지갑이 좋다, 어디서 샀나, 돈 넣는 데가 있느냐 등 질문을 해 대는데, 그 할머니는 딸이 사줬다면서 지갑을 만져보게 했지만 그리 친절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두툼한 본인의 지갑을 꺼내 보여주며 돈 자랑을 하는 것 같았다. 그 할아버지는 또 바지 주머니에서 5만원권으로 보이는 제법 많은 돈을 꺼내 보여주고는 다시 집어넣었다. 할머니의 반응은 약간 시큰둥했다. 뭐 하러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다니느냐는 것이었다. 5만 원, 10만 원 정도 가지고 다니면 적당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할아버지는 돈을 적게 가지고 다니면 허전하고, 밥도 사먹고, 친구도 만나고, 어쩌고저쩌고 말을 이어가다가 그 할머니에게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다. 그 할머니가 녹번동까지 간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그 할아버지는 맛있는 거 사줄 테니 중간에 내리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거절할 것 같은 그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살짝 끄덕이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아, 충무로다, 하면서 두 분이 같이 내려 할머니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함께 유유히 사라졌다. 과연 그 분들은 어디 가서 무얼 사 드셨을까? 하하.

인사동 거리를 거닐며 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했다. 한복을 입은 신혼부부,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 쌍쌍의 연인들, 아주머니, 아저씨, 외국인, 바이올린 맨, 크림장수, 별에 별 잡동사니 장수들이 함께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뒷골목엔 소주병을 옆에 놓고 앉아 있는 노숙자도 여러 명 보였다. 오늘 따라 인사동 거리가 외계처럼 느껴졌다. 수많은 층위의 정신을 가진 사람들. 너는 어느 층위에 속할까? 너는 아무것도 사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그 연옥을 빠져나왔다. 5호선 열차에서 친절한 세계사를 몇 쪽 읽었다. 그 책에는 말()2필의 말이 끄는 경전차(輕戰車)가 고대 제국을 탄생시켰다고 했다. 인류는 말 덕에 더 효율적으로 전쟁을 했단다. TV에선 또 비인간적인 뉴스가 나왔다. 부산 여중생들의 친구 폭행사건, 우울증 엄마가 저지른 친자식 살인사건, 북한 핵실험, 전술핵무기 이야기 등등.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 세상에는 악마가 참 많은가보다. ㅠㅠ. 2017.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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