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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마음의 여유

마음의 여유

시간, , 다 여유가 있으면 좋다. 마음에 여유가 있으면 더욱 좋고. 그런데 이 모든 여유를 다 갖기는 어렵지. 또 다 있다 해도 그 여유를 적절하게 쓰지 못하면 그것도 문제지. 세상에 여유 있는 사람이 망가지는 경우도 많거든. 시간 많다고 빈둥빈둥, 돈 많다고 흥청망청, 그런데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은 덜 망가진다. 아니, 그들은 망가지지 않고 여유를 즐긴다. 시간, 돈이 별로 없어도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인생을 즐긴다. 꼭 누구 말 하는 것 같지만.

너는 오늘 집에서 말도 안 되는 영어 번역을 하다가 따분해서 시간 여유도 없는데 마음의 여유를 부렸다. 오후 3시 경에 무작정 집을 나섰다. 방향은 나가면서 정했다. 인사동. 인사동에 가면 왠지 멋진 인사들을 만날 것 같은, 그래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우리 인간사를 예술로 논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즐기며 지하철에서 스마트 메모를 해댔다. 인사, 인사, 그래 사람은 인사를 잘해야 돼. 예전에 누가 그랬지. 인사를 잘하면 인사발령을 잘 받는다고. 하하.

전철에서 내렸다. 종삼(종로 3)이네 거리는 우선 실버 천지, 등 굽은 노인들이 벙거지를 쓰고, 흰 턱수염을 기른 노인은 한껏 예술가인척 넝마주의인 척 인파속으로 묻혀 돌아간다. 한 미술관이 보였다. ‘미술세계라는데 작품 전시를 한다기에 들어가 보았다. , 공짜 작품전. 네가 좋아하고, 그리고 싶어 하는 풀꽃 그림들. 신기하게 살펴보다가 네가 서울대 사회대 후원에서 본 수국같이 생긴 그 꽃의 그림을 발견했다. ‘나무수국이라 한다. 수국아! 반갑다. 성이 나무 목씨라고? 나는 오얏 이씨야. 인사나 트고 지내자. 하아. 네가 겨울까지 꽃잎을 떨구지 않았던 거로구나. 아까워서 그랬지? 그런데 지난 1월에 보니 정원사가 나뭇가지들을 잘라버렸던데, 그래도 또 새로운 꽃이 피어나겠지? 새 꽃은 새줄기에 달아야 하나보다.

그 아름다운 그림들은 서울여대 FLORA 아카데미에서 배운 학생들이 문화센터 강사로 활동하며 그린 작품이라네. 그림의 대상이 주로 풀과 나무와 꽃이라서 이를 Botanical Art(식물 화)라고 한다는 군. 그리고 서울여대 지도 교수가 한국식물화가협회도 만들었다 하네. 그런데 식물화가, 어감이 좀 이상하네. ‘풀꽃화가라고 하면 더 아름다울 것 같은데. 그야 전문가들의 마음이지 네가 간섭할 일은 아니지 뭐.

전시 그림 도판을 하나 사가지고 통문관으로 가니 통문관은 문이 닫혀있었다. 통문관은 전의 이씨 이겸노 할아버지가 국보급 고서를 더러 발굴하여 우리 서적문화재 보존에 기여한 공로가 있는 고서점으로 유명하다. 그 할아버지는 10여 년 전에 돌아가시고 지금은 손자가 경영한다는 글을 신문에서 본적이 있다. 오늘은 통문관이 닫혔으니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 전철을 탔다. 외출한지 겨우 3시간, 벌써 집이 그리운 건지, 번역일이 마음에 걸리는 건지, 아무튼 집 나오면 집이 그리우니 이것도 회귀본능인가? 그래, 그렇다면 집도 고향이지. 네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곳이 고향이지 뭐. 하하. 이 글을 쓴 다음 또 우리 학교도서관의 발전을 위해 번역을 해보자. 그건 돈 안 되는 네가 자초한 너의 사명이란다. 2017.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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