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아름다운 나무
단풍의 계절이다. 단풍은 나무만의 특권인가보다. 사람에겐 단풍이 없으니. 사람에겐 단풍은커녕 기미, 죽은 깨, 저승꽃, 흰머리[白頭], 알머리[裸頭], 뭐 그런 추한 색깔만 있다. 그러나 단풍은 아름답다. 단풍이라고 붉은 색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단풍은 그야말로 원더풀 멀티 컬러풀이다. 영어 써서 송구.
너는 해마다 단풍을 보고 감탄하고, 단풍을 보고 삶을 달래고, 단풍을 보고 시를 쓰고, 단풍을 보고 철학을 한다. 단풍의 철학? 철학을 어렵게 공부할 필요는 없지. 철따라 철이 들어가는 게 철학 아닌가. 철이 가도 철이 안 들면 철학을 모르는 걸 거고. 나무는 관세음이다. 나무 관세음. 나무는 세상의 소리를 보고 정화하여 아름다운 색깔을 칠한다. 소리를 어떻게 볼까? 그래도 나무는 소리를 본다. 바람소리를 보고, 빗소리를 보고, 천둥소리를 보고, 새 소리를 보고, 물소리를 보고, 세상의 온갖 소리를 본다. 그래서 나무 관세음(觀世音)이지.
나무의 미술은 단풍만이 아니다. 봄 그림, 여름 그림, 가을 그림, 겨울 그림, 이 모든 것이 나무의 미술이다. 미술과 함께 나무는 일을 하지. 봄엔 꽃일, 여름엔 여름일, 가을엔 추수일, 그 결과 모든 이웃에 풍성한 먹거리를 베풀고 겨울엔 동안거를 하지. 나무는 하안거는 하지 않아. 여름엔 열심히 일해야 하니까.
부처님이 나무를 닮은 걸까? 부처님이 나무보다는 어리니까.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았고 하니까. 그래서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천수보살, 나무군다리보살, 나무대월보살, 뭐 그렇게 염불하는지도 모르지. 물론 어원적으로 그 나무는 그 나무가 아니라는 걸 알아. 나무는 귀의한다는 뜻의 산스크리트 말을 중국 사람이 음사했다고 들었어. 그런데 우리말로 나무와 발음이 같고, 부처님도 나무를 닮았으니 그 나무를 그 나무라 해도 무방할 것 같지.
나무는 언제나 아름다워. 늙은 나무도 죽은 나무까지도. 나무는 너의 집이 되고, 너의 살림이 되어 향기를 풍기며 너에게 선업을 짓고 있지. 오늘도 너의 책상, 너의 침대, 너의 걸상, 너의 책꽂이, 너의 거울, 너의 책, 아! 너의 책, 너의 책! 너에게 최고선을 베풀고 있구나. 너는 이걸 진작 깨달아야 했어. 그랬으면 더 일찍 나무가 주는 진리를 더 읽고, 가꿀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지. 지금이라도 나무를 알았으니, 책이 나무라는 걸 알았으니 너는 이제 나무처럼 아름다운 나무도서관보살이 되렴. 하하. 나무관세음도서보살마하살. 2016. 10.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