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질
너는 목수의 아들이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 무렵 나무로 세발자전거를 만들어 마당에서 타고 놀았지. 큰 통나무를 잘라 바퀴를 만들고, 굵은 다래넝쿨을 잘라 핸들을 만들고, 철근 조각을 휘어 페달(pedal)을 만들고, 삐걱거렸지만 그럴 듯하게 굴러갔지. 너는 톱질, 대패질, 자귀질, 그런 것도 그런대로 좀 했었지. 그런데 왜 그런 작업을 질이라고 할까?
질을 붙이면 가치가 좀 떨어지는 것 같아. 하지만 건전한 데 질을 붙이면 가치가 떨어지지 않아. 예를 들어 물레질, 삽질, 괭이질 등 신성한 노동에 들어가는 질은 저속하게 들리지 않는데, 갑 질, 삿대질, 도둑질, 서방질 등 신성하지 못한 행위에 붙이는 질은 저속하게 들리거든. 하하. 그럼 선생질은 어떨까? 선생에게는 두 가지 질이 있는 것 같아. 선생도 선생 나름이거든. 유치원 선생들 가끔 아동학대하여 언론에 나오지. 초, 중, 고, 대학 선생들도 이상한 질이 많고, 세상엔 온갖 질이 다 있지. 그래서 품질관리가 필요한 것 같아. 그런데 학생한테는 질을 안 붙이네. 학생질이라는 말은 없거든. 배우는 사람은 신성해서 그럴까?
너는 목수의 아들이다. 그런데 목수가 하는 일에 질을 붙이면 폄하하는 느낌이 들지 않으니 목수 일은 신성한 것인가 보다. 하기야 노동은 거의 다 신성하지. 노동은 언제나 크고 작은 보람을 안겨주니까. 아, 벌써 4시네. 야간대학 선생질 하러 학교에 가봐야겠다. 갔다 와서 이 글을 더 엮어봐야지.
오늘은 중간고사라 시험 감독을 하고 왔지. 그런데 조금 회의를 느꼈어. 감독이 강의보다 편하지는 않아. 그냥 뻥하니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들이 암기하여 써내려 가는 답안지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자니 참 무료하고 지루해, 바보 같기도 하고. 그래도 학사제도가 그러니 다른 방법은 없는 거지. 그런데 학생들한테는 시험이 꼭 필요해. 시험이 없으면 공부를 안 하거든. 네가 12개 과정을 이수한 서울대 평생교육원 강의가 왜 공부가 안 되는지 생각해 본적이 있는데, 시험이 없어서 그런 것 같더라고. 그런데 시험이 스트레스가 되어서는 안 돼. 그래서 시험은 주관식이 좋지. 주관을 만들어 주거든. 자신을 예쁘게 만들어 가는 공부, 선생이건 학생이건 그런 시험공부가 필요한 것 같아. 날마다 읽고, 쓰고, 반성하면서 그렇게. 그게 참다운 선생질인지도 몰라. 2016. 10. 21(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