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기행
2016년 9월 17일 토요일 오전 10시 30분, 너는 또 도서관을 나섰다. 너는 전에 말했듯이 여행지수 80%, 도통 못 말리는 역마살을 타고 났나보다. 오늘은 인천 한국근대문학관을 목표로 하지만, 시간이 남으면 인천자유공원에 가서 맥아더장군을 만나볼 생각이다. 문정에서 청색 버스 461번을 타고 수서역에서 전철로 갈아탔다. 전철을 타기 전에 꼭 해야 하는 준비운동, 일단 커피 한잔을 빼서 마셨다. 전철역 커피는 기껏해야 3백 원 또는 4백 원이다.
전철 열차에 올랐다. 열차 안은 빈 좌석이 많았다. 명절 끝인데도 서울시내 유동인구는 적은 모양, 성묘다, 귀성이다, 귀경이다, 하여 사람들이 피곤해서 쉬시는가보다. 너는 열차에서 메모지를 넘겨가며 생각의 흐름을 적어간다. 그러니까 시간이 잘도 흐른다. 어느 새 학여울역, 학여울역에서 여울의 중국어 한자가 생소하다, 사전을 봐봐, 아하 여울 탄(灘)자. 현해탄, 충주 삼탄 등의 탄과 같은 거야. 그래서 학여울역은 학탄역(鶴灘驛)인 거지, 이곳 시냇물에 여울이 있어 학들이 모여 학을 띠며 놀았나봐.
이때 갑자기 너의 머리에서 ‘새것은 좋은 것’이라는 명제가 떠올랐다. 뭐든지 새로운 것, 새 물건, 아기, 새 사람, 새 아기, 새 가방, 새 볼펜, 새 종이, 새 건물, 새 아파트, 새 정부, 새 직장, 그럼 너는 뭐야? 새 사람이 아니잖아! 노인이잖아? 그런데 한 가지 또 좋은 말이 떠오르네, 새 노인이라는 말, 노인이면 노인이지 새 노인이 어디 있니? 아냐, 있어, 초로(初老)의 신사는 새 노인이지, 처음 늙는다, 새로 늙는다, 이 말이거든. 그려, 새 노인, 참신한 노인, 하하. 아직 너는 경로우대증도 없잖아. 하지만 새 노인은 새 사람이란 뜻이지, 새 노인도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지, 그래서 오늘도 너는 새로움을 추구하러 이렇게 도서관을 나왔잖아? 스스로 위로하는 것도 기분이 꽤 좋은 걸, 하하. 노인이라도 에너지가 남아 있을 때 열심히 돌아다녀야 한다, 이거야. 오늘 아침에 SBS ‘세상에 이런 일이’ 프로그램에서 보았잖아. 90이 넘은 노인들이 탁구대 모서리에 볼펜을 세워 놓고 탁구공으로 맞추질 않나,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가볍게 훌라후프와 줄넘기를 하질 않나, 축구공을 차서 한 번에 볼링 방망이를 맞추질 않나, 늙었다고 얕볼 일이 아니더라고. 오팔(OPAL)이라는 용어가 있지, OLD PEOPLE WITH ACTIVE LIFE. 그러니 저승 접수 마감 날은 머지않았어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저 분들이 오팔 아니겠는가? 진정 새 노인이 아니겠어? 그러고 보니 너는 얼굴엔 잔주름이 지고 머리는 많이 빠졌어도 몸통 피부는 왜 주름하나 없냐? 너의 매형은 몸통에도 주름이 많던데, 이상하다. 왜 그렇게 피부가 곱냐? 하하. 너도 모르겠지? 그래서 행복하지?
너는 혼자서 즐거워한다. 이렇게 사지가 멀쩡할 때, 별 돈 안 들이고 여행을 다니는 것, 이 역시 즐겁지 아니한가(身體 健康, 無錢旅行 不亦說乎)? 공자님 말씀은 아니고, 이 종자(鐘子)님 말씀이지, 하하. 근데 종자님은 또 뭐야? 아, 종자님이란 종을 울려 세상을 깨우치는 사람이라 이거야, 아니 그럼 네가? 네가 세상을 깨우친다고? 하하. 왜, 안 된다고? 너도 이름값을 좀 하고 싶다 이거야. 하하. 그래 잘 해봐라.
열차 안에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제 서 있는 사람이 제법 많다. 서 있는 사람들, 법정스님은 서 있는 사람들이 더 좋다고 했지. 그 분의 <서 있는 사람들>이라는 수필도 있잖아. 서 있으면 깨어 있기 쉽고, 깨어 있으면 생각을 더 잘 할 수 있고, 그 생각들을 좀 더 심화시키면 좋은 아이디어도 될 수가 있고, 그래서 너도 서있는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지. 법정스님 만큼은 아니라도 너도 생각은 많지. 새로운 생각,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표현, 새로운 정보, 새로운 소통, 이러한 것들이 어울려 새 사회가 된다고 믿고 있지. 너의 머리에 상상의 드론이 잠자리처럼 날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있지. 아 그럼 매미보다 잠자리가 나은가? 아, 잠자리는 잠자리걱정은 안 할 것 같다. 스스로 잠자리니까? 자기가 있는 곳이 잠자리니까. 하하.
어제 너는 또 새로워지기 위해 신효범의 예쁜 노래, “슬플 땐 화장을 해요”를 스마트폰에 녹음했지. 그래 슬플 땐 화장을 해, 그거 참 좋은 방법이야, 외로울 때도 화장을 하면 좋겠다. 화장을 하면 예뻐지지. 그런데 마음에도 화장을 해봐. 마음이 예뻐지면 몸도 더 예뻐지지. 에이 밥맛없는 얘기는 하지 마, 마음에다 어떻게 화장을 하냐? 아니야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마음에 화장하는 게 더 쉬울 수 있어, 예쁜 마음만 먹으면 되거든, 모든 게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도 있잖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말이야. 하하, 야, 너 불교 믿니? 아니 불교는 믿는 게 아니라 깨달아 가는 거야. 과정의 종교라 할까. 과정은 삶이지, 그래서 삶의 종교라고 하지. 불교는 삶의 과정에서 하루하루 마음을 깨달아가는 생활종교이지, 그래서 무조건 믿지는 않아. 내가 아는 불교는 그것뿐이야.
어느 새 교대역, 교육대학교가 이 근처에 있지. 초등학교 선생님들을 기르는 학교, 참 좋겠다. 너는 교대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해야 하는데 딴 생각을 하다가 하마터면 못 내릴 뻔 했다. 너는 황급히 내렸다. 신도림역으로 가서 인천행을 탈 예정, 네가 환승계단을 오르자마자 2호선 열차가 승강장으로 들어왔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빈자리도 있다. 서 있는 것도 좋지만 앉으면 메모를 잘 할 수 있어 좋다. 아니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으면 넌 줏대 없는 놈 아냐? 아니다, 이런 경우는 줏대하고는 상관이 없어. 처해 있는 환경을 잘 활용하는 거지. 그런데 만약 북한처럼 줏대 너무 지키다가는 무너질 수도 있다, 너. 너무 줏대를 내세우면 스스로 무너지는 법, 스스로 무너지는 게 진짜 무서운 거지. 무너지는 사람들은 거의 다 스스로 무너지거든. 도산하는 기업들 봐. 스스로 관리를 못 하니까 법정관리 들어갔다가 결국 무너지지. 그래서 사람은 유연해야 해. 중심을 잡되 유연하게 잡아야지. 지진이 나도 유연하게 흔들다가 오뚝이처럼 제자리에 딱 서야 해. 그래야 좋은 일을 많이 잘 할 수 있어. 중심을 잡되 유연하게 잡는 것을 중용(中庸)이라고 한다지? 중도가 아닌 중용 말이야. 그래서 그런지 사회과학에서도 상황적응이론이라는 게 있지.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거든. 적자생존 말이야. 적자생존.
열차가 지상으로 나왔다. 곧 환승역 신도림에 도착했다. 신도림, 이름 참 좋네. 新道林, 새로운 길이 있는 숲. 아, 여기서도 새것을 좋아하는구나. 숲길을 가는 예쁜 연인 한 쌍이 연상된다. 그 숲길은 얼마나 신선할까? 얼마나 삼림욕이 잘 될까? 그런데 신도림에 숲이 있기는 있을까? -- 상상을 접고 전철 1호선 열차를 탔다. 잠시 눈을 붙이는 사이 열차는 어느 새 인천역에 도착했다. 12시 40분이다. 광역시인데도 시골 역사 같은 인천역, 1번 출구로 나오니 시가지라 방향 감각을 잘 모르겠다. 너는 역 앞 관광안내소에 들어가 한국근대문학관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여직원이 인천관광지도를 1장 건네주며 길안내를 잘 해준다.
인천 역전 큰길을 건너니 바로 차이나타운이다. 너는 오르막길을 조금 올라갔다. 그런데 거리가 낯설지 않다. 예전에 네가 기적의도서관에 근무할 때 어린이들과 함께 견학을 와본 곳이었다. 하하, 반갑다. 그때도 짜장면을 먹었지, 그래 오늘도 짜장면을 먹어보자. SBS 생활의 달인 간판이 붙은 중국음식점에 들어갔다. 혼자라서 좀 미안했지만, 식당 종업원들은 개의치 않았다. 4천 원 하는 짜장면을 시켰다. 그런데 종업원들이 한국인인 줄 알았는데 자기들끼리는 쭝찡쭝찡한다. 화교인가보다. 하하, 한국어와 중국어 2개 언어를 잘도 구사하는군. 약간 부럽다.
인천도 식후경이라, 이제 여유 있는 관광을 시작한다. 먼저 한국근대문학관으로 향했다. 태양이 작열하여 머리 밑이 따갑다. 두피 살균이 잘 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근대문학관에 이르렀다. 문학관의 겉모습은 초라해보였다. 관람료는 무료, 너는 공짜는 좋아하지 않는데, 그래서 그런지 너는 대머리는 아니고 속 머리가 빠졌다. 공짜는 이제 서비스가 아니지. 약간의 돈을 받더라도 실속 있는 서비스를 해 주는 게 더 좋지. 문학관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어대며 관람을 했다. 전시 도록은 없고 옛날 책을 전시하고 설명해 놓은 전시장이 전부다. 그야말로 전시효과만 있을 뿐. 인천소재 고등학교에서 예전에 발간한 교지를 기획전시하고 있다. 교복과 모자도 비치해 놓고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포토 존도 마련해 두었다. 너는 교복은 입지 않고 옛날 고교생 모자를 쓰고 스스로 사진을 찍었다. 너의 사진이 마치 익살꾼 같다. 하하, 재밌네. 이어 상설 전시장을 구경했다. 이인직의 혈의 누, 이광수의 무정,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염상섭의 삼대, 김소월, 백석, 유치진, 이육사, 수많은 근대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다. 신기하게 들여다보면서 사진을 찍어댔다.
한국근대문학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한중문화원에 들렀다. 전에도 와본 곳인데 좀 생소하다. 한중도서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9월 19일에 마감이라는데 오늘이 9월 17일이니 역시 타이밍이 잘 맞다. 방명록에 사인을 했다. 사인을 해 주면 자기들이 한중도서관을 만드는 데 유리하다고 했다. 도서관을 만든다니 긔 더욱 반갑다. 전시되어 있는 중국책들을 관람하며 또 사진을 찍어댔다. 남는 게 사진밖에 없으니. 하하. 여기서도 3층 상설 전시장을 마자 관람하고 바로 1층으로 내려왔다.
이제 인천자유공원으로 가야 한다. 길을 몰라서 거리에 서있는 경찰에게 물었다. 그런데 뜻 밖에도 자유공원을 잘 모른다고 했다. 아마 의경인 듯,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인천에 근무하면서 자유공원도 모르냐. 그런데 모른다고 해 놓고는 미안한지 다시 알겠다고 하면서 연안 부두 쪽으로 가라고 했다. 영 엉터리 같아 그 의경의 말을 믿지 않았다. 조금 내려오니 아까 그 차이나타운이 나오는데, 그 거리 한 모퉁이에 화살표, 자유공원 270m 라는 이정표가 있다. 바로 거기가 거기였다. 오르막길을 좀 올라갔다. 벽화의 거리를 지나 공원 숲길이 전개된다. 공원에 오르니 웬 탑 같은 시설물이 보인다. 한미수교 100년 기념탑이라고 했다. 아무런 부대시설이 없는 단순한 설치물이다. 기념탑을 왜 저렇게 조형물만 만들었을까? 다소 의문이 들었지만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어 그냥 내려와 맥아더 장군 동상으로 향했다. 공원의 꽃밭이 예사롭지 않다. 인공미는 나지만 아름답다. 꽂을 가져가지 말라는 문구도 붙어 있다. 인천에는 공원의 꽃도 누가 가져가는지? 하기야 어디든 별사람이 다 있으니까. 맥아더 장군의 동상 앞으로 다가갔다. 나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장군의 동상 앞에 서서 거수경례를 올렸다. 장군님, 우리 한반도의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인천 상륙작전을 지휘하신 장군님,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늦게나마 이 종자(鐘子) 경의를 표합니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장군의 동상 발치에 비둘기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너를 바라본다. 장군 앞에는 비둘기의 평화가 깃들어 있다. 비둘기야, 너희들이라도 장군을 외롭지 않게 잘 모셔라. 그래 착하지, 아이 착하다. 그런데 너희들 똥은 좀 다른데 가서 눠라. 에헴. 다시 차이나타운으로 내려왔다. 갈증이 왔다. 누가 호객을 하기에 들어갔다. 거기서 양고기 꽂이를 안주삼이 시원한 맥주 한잔을 들이켰다. 갈증이 가셨다. 너는 다시 인천역에서 서울행 전철을 밟았다. 2016. 9. 17(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