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치료
한동안 인문예술 분야에서도 치료라는 말이 유행했다. 시치료(poetry therapy), 독서치료(bibliotherapy), 문학치료(literature therapy), 저널치료(journal therapy), 음악치료(music therapy), 미술치료(art therapy), 영화치료(movie therapy), 웃음치료(laugh therapy) 등등. 그러고 보니 이 모두를 통틀어 인문학 치료(humanities therapy)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일단 오늘은 영화나 한편 보고 싶다. 고산자.
인문학은 문학, 사학, 철학, 언어학, 예술학 등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이 모두가 인간의 정신적 측면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래서 인문학과 치료를 연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인문학을 제대로 하면 정신이 똑바로 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문학을 전공하고도 이상한 사람이 더러 있다. 아마 그런 사람은 인문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분은 말로만 인문학을 한 것이다. 인문학의 본질은 말보다 실천에 있는데 말로만 그럴 듯하게 나불거리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사실 좋은 말은 예전에 현인들이 다 해 놓았다. 인류사 오천년~만년 동안 수많은 성인 현자들이 사람다움에 대하여 고민한 바를 고전으로 집약하여 우리에게 물려주셨다. 동서양의 고전들은 인문학의 결정판이다. 그런데 정보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 후손들은 고전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을 뿐 아니라 피상적으로 좀 보고나서 마치 다 아는 양 강좌니 뭐니 떠들고 다니는데 그런 분들은 과연 인간다움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을지, 나이가 들어가니 의심만 늘어난다. 모두 나 때문이다. 이야기는 결국 자기이야기니까.
그래서 오늘도 반성해야 한다. 나의 반성 방법은 일기쓰기다. 이렇게 하루에 한두 편 글을 쓰면 마음이 정리가 좀 되어 독거노인이라도 외롭지 않다. 돈이 없어도 무섭지 않고, 혼자 살아도 우울증 같은 것은 없다. 이런 걸 글쓰기치료, 저널치료라고 하는가 보다. 계속 더, 더, 더, 더 공부하고, 언설은 더, 더, 더, 더 겸손하게 해야겠다고 매일 생각하게 된다. 겸손은 비굴이 아니라 진실이다. 방금 부엌에서 어느 여인의 목소리가 났다. 쿠쿠가 맛있는 잡곡밥을 완성하였습니다. 밥 먹고 대동여지도 김정호선배님을 뵈러 가야겠다. 그런데 상영관이 어디지? 인터넷이 고장 났다. 왜 툭하면 고장이지? LGU+가 아니라 LGU-인가? 2016. 9. 16(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