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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번역이 이상하다

번역이 이상하다.

2015년 7월부터 12월까지 책 두 권을 공동 번역했다. 어떤 도서관에서 번역을 의뢰한 것이었다. 그 하나는 <신나는 스토리텔링>, 또 하나는 <청소년서비스 101>이다. 그런데 그 중 한 권이 번역이 이상하단다.

<신나는 스토리텔링>의 원 제목은 <Folktales aloud: practical advice for playful storytelling>으로 저자는 Janice M. Del Negro이다. 원제목 그대로 번역하면 <옛이야기 소리 내어 읽기: 재밌는 스토리텔링을 위한 실무안내>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어색하여 <신나는 스토리텔링>이라고 의역하고, “스토리텔링 코칭/스토리텔링 정보원” 이라는 부제목을 넣었다. 책의 주 내용이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면서, 옛 이야기에 대한 많은 정보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서비스 101>의 원제목은 <Teen Services 101>이며 부제목은 “A Practical Guide for Busy Library Staff”, 저자는 Megan P. Fink이다. 이 책은 내용이 미국 공공도서관에서의 청소년서비스 실행을 위한 안내로서 부제목에 있는 것처럼 “바쁜 사서들을 위한 청소년서비스 실무가이드” 이다. 그래서 역자는 이 책의 제목을 <공공도서관 청소년서비스>라 의역하고 부제목을 “청소년서비스 실무가이드” 라고 번역했다. 그런데 도서관 측에서 제목을 <청소년 서비스 101>로 바꾸고, 부제목은 역자의 번역 그대로 두었다. 이 책에서의 101의 의미는 서비스 101가지를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역자는 제목 번역에서 101을 빼고 그냥 <공공도서관 청소년서비스>로 의역했던 것이다. 이 책의 101의 의미는 대학에서의 기본 커리큘럼 번호가 100단위로 시작된다고 하여 가장 기본적인 것을 101로 쓴 것 같은데, 이는 독자들이 알아차리기에 쉽지 않고, 서비스가 101가지가 있는 줄 오해할 소지도 있다. 그래서 역자는 제목에 101을 넣지 않았던 것인데, 도서관측은 원서의 제목을 그대로 따랐다.

그런데 그 두 권의 번역 원고를 제출한 얼마 후 그 도서관으로부터 청소년서비스는 괜찮은데, 스토리텔링의 번역이 이상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공동번역자를 통하여). 제목이 이상하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내용 번역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대로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수정하고, 또 여러 번 다시 살펴보고, 소리 내어 읽어보아도 역자로서는 더 이상 이상한 곳이 어딘지를 알 수가 없었다. 이 책에는 동화가 16편이나 실려 있어서 동화번역 부분은 읽을수록 재미있기까지 했다. 무엇이 이상하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상하다고 하니 이상한가보다, 역자의 능력의 한계인가보다 생각하고 그냥 잊기로 했다.

그런데 며칠 전 어떤 교수로부터 내 전화번호를 알았다면서 전화가 왔다. 그 도서관 직원이었다. 금년도 번역 사업을 진행하는 모양이었다. 전화에서 나에게 책을 번역해 본적이 있느냐고 묻기에, 작년에 그 도서관에서 의뢰받아 두 권을 번역했다고 했더니, 아, 그러세요, 두 권씩이나 번역을 하셨어요, 했다. 그러면서 작년에 스토리텔링에 관한 책 번역이 이상하다고 들었다면서 주저주저했다. 그래서 저한테 일 안주셔도 괜찮아요, 했더니 얼버무리며 전화를 끊었다. 작년에 그 이상하다는 평가가 그 도서관 직원들 사이에 강하게 남아 있나보다. 다시 또 기분이 좀 이상했다. 내가 정말 번역을 그렇게 이상하게 했나, 하고. 그 책을 또 꺼내 읽어보았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이상한 곳을 발견할 수가 없으니 내가 이상하든지, 나의 번역이 이상하든지, 아니면 그들이 이상하든지, 셋 중 하나일 것 같다. 내가 번역한 책은 위의 2권 말고도 <자료 보존론>(1999), <도서관의 역사원리>(2004), <어린이도서관 서비스경영>(2009), <IFLA 학교도서관 가이드라인>(2009), <장서개발관리론>(2012) 등이 있는데, 그런 것도 이상한 구석이 있을 것 같아 좀 걱정이 된다. 또 현재 IFLA와 그 출판사(DE GRUYTER SAUR)에서 번역권을 승인받아 2015년에 개정된 <IFLA School Library Guidelines>와 가이드라인의 각국 적용사례집 <Global Action on School Library Guidelines>을 번역하고 있는데, 이들도 이상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사실 번역을 완벽하게 하기란 쉽지 않다. 서양인의 사고방식, 문화, 언어, 표현방법이 우리와 판이하게 다르므로 세상에 완벽한 번역은 있을 수 없다. 지난번 맨부커상을 탄 소설 <체식주의자>는 한국어를 전공한 젊은 영국인이 영어로 잘 번역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영문판을 사서 첫 페이지를 살펴보니 우리 작가가 표현한 절묘한 우리말을 영어로 표현하지 않은 부분도 눈에 많이 띄었다. 그 영국인 번역가도 그들의 사고방식과 문화에 맞추어 대단한 의역을 한 것 같았다.

남이 볼 때 내 번역이 이상하다면 이상한 것일 수 있다. 내가 번역을 아주 잘한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가급적 복잡한 영문의 행간을 읽고 의역하여 우리말 문장이 매끄럽게, 독자에게 의미가 잘 통하도록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번역이 이상한지 아닌지는 앞으로 독자들이 판단해줄 것이라 믿는다. 이제 갑의 용역은 더 맡고 싶지 않다. 내 스스로 나의 할 일을 찾아서 하는 자유, 그러한 학문의 자유를 누리고 싶다. 요즘 1965년에 32세로 요절한 천재 문학가 전혜린이 번역한 독일소설 <생의 한 가운데>를 읽고 있다. 원문은 모르지만 정말 잘한 번역 같다.

끝으로 지엽적인 문제지만 그 도서관에 대하여 한 가지를 지적한다. 우리가 작년에 번역하고 그 도서관이 정부간행물처럼 만든 그 두 책의 뒤표지 날개에 있는 번역사업 연도에 오류가 있다. 2015년도 번역 사업인데 두 권 다 2014년도로 되어 있다는 걸 알려드려요. 또 그 도서관 홈페이지의 발간자료, 우수번역자료 소개 난에 있는 <신나는 스토리텔링> 설명에는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을 위한 실질적인 가이드, 세계 각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12개의 전래동화를 각색하여 엮음”으로 되어있는데 실제로 16편의 동화가 있다는 걸 알려드려요. 2016. 7. 23(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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