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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일기문학

2016. 7. 9(토) 맑음

일기문학

일기를 쓰면 문인이 된다. 오늘 새삼 떠오른 생각이다.

아침에 송파도서관에 다녀왔다. 어제 알게 된 전혜린의 책을 한권이라도 보기 위해서였다. 문정1동사무소(주민 센터라는 용어는 어쩐지 쓰기 싫다)에서 초록버스 3317이 송파도서관으로 간다. 송파도서관은 교육청 소속으로 꽤 오래된 도서관이다. 도서관에 들어가니 우중충한데 1층 갤러리에서 그림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그 앞을 기웃거렸더니 자원봉사자라면서 어떤 남자가 전시설명을 자처한다. 약간 지루한 설명을 들으며 여러 그림들을 관람했는데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불교도 아니고 도교도 아닌 좀 낯선 그림들이다. 동호회처럼 결성된 수련단체의 화가들이 그린 그림이라는 데 나에겐 마치 신흥종교의 선전처럼 느껴졌다.

2층 문학 자료실에 들어가 검색을 해 보았다. 한번은 ‘전혜린’으로 또 한 번은 ‘생의 한 가운데’로 키워드를 쳤다. ‘생의 한 가운데’는 전혜린이 번역한 독일 소설이라는데 대출가능하고, 전혜린의 생애를 알 수 있는 책으로는 “불꽃 같이 살다간 여인, 전혜린”이라는 정공채의 책이 괜찮을 것 같아 둘 다 서가위치 안내표를 뽑았다. 서가에 가보니 전혜린 평전은 있는데 소설 ‘생의 한가운데’는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그래서 직원한테 찾아 달라 했더니 그 직원도 못 찾겠다, 꾀꼬리였다. 개가식이라 이용자가 잘못 꽂아놓을 수도 있으니 나중에 나오면 연락해 달라고 부탁하고 전혜린 평전만 빌려가지고 왔다.

몇 줄 읽어보니 재미가 있다. 호기심이 더해진다. 우선 서울대 법대를 3년 씩이나 다니다 뮌헨으로 유학을 떠나는 이야기가 나왔다. 전혜린은 경기여고들 나왔는데 고등학교 시절부터 문학을 좋아했고 문학적 감성이 풍부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가 법대를 가라는 바람에 법대를 가기는 갔는데 도무지 법공부가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증거들은 다 그 분의 일기와 『女苑』이라는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나온다고 했다. 전혜린은 여학교 시절 단짝친구 주혜와 문학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문학, 철학, 어학(영, 독, 불, 한문, 한글)을 열성적으로 공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읽은 책에 대하여 날마다 일기를 써서 친구와 서로 교환했다고 한다.

앞으로 더 읽어보겠지만 평전의 앞부분만 좀 보아도 전혜린 문학의 출발은 일기인 걸 알 수 있다. 일기라는 글쓰기 습작과 천재적 감성이 시너지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유학을 가서 독일문학을 섭렵(?)하고 30세 안팎의 젊은 나이에 대 번역문학가와 성균관대학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검색을 해보면 전해린이 번역한 작품이 제법 많이 있다. 34세에 생을 마감했음에도(천재는 왜 일찍 죽을까? 그것도 머리가 너무 좋아서일까, 법학도 남편을 차버리고 자살은 또 왜 해나, 그 부분은 이해가 안 된다. 살았으면 노벨상도 탔을 것 아닌가) 그 때까지 이룩한 번역 작품이 저 정도 된다는 것은 그의 천재성을 증명하고도 남을만 하다.

아무튼 일기, 일기가 중요하다. 일기란 사소한 사실(fact)의 기록만이 아니다. 어릴 때는 상상력이 덜 발달되어 밥 먹고, 학교 가고, 아기 보고, 숙제하고, 바람이 상쾌하고, 이런 좀 사소한 것들을 일기에 쓰지만, 감성과 상상력이 늘어나면서 일기는 문학이 되어간다. 일기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걸 예전엔 왜 몰랐을까? 일기는 모든 글쓰기의 기본인데, 쓰다보면 생각이 생각을 낳고, 문학적 감성이 더해지면 작품도 탄생할 텐데,,, 그래서 내가 요즘 하루에 한두 편 인기 없는 일기를 써서 SNS에 올리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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