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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종교와 인문학

2016. 7. 7(목)

종교와 인문학

인문학에는 종교학도 포함된다. 어떤 인문학자는 인문학을 문사철언예종으로 외우기 좋게 요약했다. 즉 인문학은 문학, 사학, 철학, 언어학, 예술학, 종교학이라는 것이다. 종교학의 연구대상은 당연히 종교다. 세계의 여러 종교(신흥종교 포함)를 대상으로 발생배경, 교리체계, 신앙체계 등을 연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학은 객관적 자세를 견지한다. 무릇 ‘학’이 붙으면 어떤 학문이든 편견을 배제하고, 보편성과 합리성 그리고 객관성을 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그런데 종교는 일단 ‘학’이 빠진다. 어느 분야든 ‘학’이 빠지면 객관성이 떨어지고 그 자리에 편견이 달라붙는다. 각 종교에 편견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종교, 특히 기독교는 무조건 하나님을 믿고 회개하라고 한다. 불교도 부처님께 절하고 소원을 빌고, 염불하고 참회하라고 한다. 물론 그러한 행위는 현실적으로는 매우 착하고 겸손한 태도이며, 겸손은 우리 삶을 착하게 인도하는 인프라이기 때문에 당연히 좋은 것이긴 하다. 그러나 비이성적, 맹목적 믿음은 이성적, 합리적 인간사회를 왜곡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어느 종교건 편견을 배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종교를 맹목적으로 믿을 때 맹신도가 되고, 그 도가 지나치면 광신도가 되어 이성적 인간사회에 마이너스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지금 그러한 현상이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종교가 최고선을 추구한다면 세상에 폭력과 전쟁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예로부터 폭력과 전쟁은 주로 종교가 원인이 되었다. 불교는 예외지만. 나는 10대 때부터 종교에 관심을 가졌었다. 성장환경이 종교적이었고 아버지도 말하자면 종교인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버지는 어느 교단에도 적을 두지는 않으셨다. 아버지의 종교에 대한 수용기준은 합리성에 있었다. 합리적이면 믿고 그렇지 않으면 믿지 않으셨다. 나는 그 점을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아버지는 삼신신앙, 원불교, 동학 모두 일정부분 수용하면서도 합리적이지 못한 부분은 미신이라고 따르지 않으셨다. 그러한 점에서 아버지는 무턱대고 믿는 종교인은 아니었다.

나도 철이 좀 들고부터는 종교학에 관심을 가졌다. 지금도 종교학에 관심이 많다. 새로 대학에서 공부를 하라면 종교학을 택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교회에도 가보고, 성당에도 가보고, 절에도 자주 가 본다. 그런데 그 곳들에서 일말의 편견을 발견하면 가기 싫어진다. 편견은 특히 기복과 연결된다. 기도하면 병이 낫고, 수능 100일기도 하면 우수한 성적을 받고, 이런 식의 선동은 종교가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현수막을 볼 때 그 종교의 편견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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