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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예, 아니오

2016. 7. 4(월) 비

예, 아니오.

전에 교과서에서 “예, 아니오.” 가 가장 어려운 말이라고 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아마 나이가 좀 든 분들은 다 그럴 것 같다. 그 깊은 뜻은 그 말의 발음이 어렵다는 게 아니라 말과 행동의 일관성 및 그 일관성의 실천이 어렵다는 말이었다. 어떤 일에 대해서 예, 하고 대답하기는 쉽다. 그런데 행동을 하지 않으면 예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그 역 또한 같다.

그런데 실제 살다보면 이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높은 분들도 공약을 번복하기 일쑤고, 평민들도 결정의 번복은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그래서 그 이유를 좀 생각해보니 근본적으로는 사람이 신이 아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 같다. 의사결정에 여러 과학적, 미래학적 기법들을 동원한다지만 시간이 지나면 환경과 조건이 달라지기 때문에 수정할 일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신이 아닌 이상 완벽한 선택과 판단은 내릴 수 없다. 아무리 임계 판단력(critical literacy)을 기른다 해도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예, 아니오.” 라 해도 인간의 본성에서 그렇게 되는 것은 이해하지 않을 수 없고, 오히려 상황변화에 따라서 “예, 아니오.”를 번복하는 것이 현명한 것일 수도 있다. 국가의 크고 작은 정책결정이 그렇고, 선출직 공무원의 선거공약이 그렇고, 회사의 경영이 그렇고, 심지어는 개인의 결혼까지도 그러하니 이럴 경우의 “예, 아니오.” 는 어쩌면 경영의 노하우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개인이나 국가나 정의로운, 합리적인 결정을 해 놓고도 정권이 바뀌거나 자리가 바뀌면 상황변화도 없는 데 지역주의나 인기에 영합하여 결정을 번복하는 경우이다. 미래 예측은 어렵지만 항상성으로 인해 추세가 변함이 없을 때는 결정을 번복해서는 안 되는데, 이런 경우에도 종종 번복을 해버리는 것이다. 이의 근본 요인은 변덕에 있다. 덕이 높은 사람은 변덕이 없다. 그러나 덕이 부족한 사람은 변덕이 잦다. 누구에게나 변화는 필요하다. 변화는 새로운 것이다. 새로움을 추구하고 새로움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변덕은 덕의 변화이므로 사람의 성품이 달라짐을 의미한다. 초등 동창이라도 한 30년 지난 후 만나보면 덕을 잘 가꾸어온 친구는 변덕 없는 성품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친구는 예전의 성품을 잃고 사기꾼이 되어 있기도 하니, 덕성의 유지가 얼마나 중요한가?

“예, 아니오.” 는 정말 어렵다. 결정의 번복은 필요할 때도 있고, 절대 안 될 때도 있으니 이의 판단은 정말 어렵다. 그러나 그 판단의 기준은 변화는 취하되, 변덕을 부리지 않는, 인간으로서의 도리, 즉 덕이라고 생각한다. 덕은 신뢰다. 덕은 도덕이다. 덕(德)은 큰 것이다. 지역을 보기보다 나라를 보고, 나라를 보기보다 세계를 보는 것, 그게 큰 덕일 것 같다. 무슨 일이든 덕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부덕의 소치는 줄어들 것이다. 이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 글을 공연히 시작했나보다. Do you understand? Yes, I do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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