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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식사와 진지

2016. 6. 23(목)

식사와 진지

우리는 날마다 식사를 하고, 또 해야 한다. 삼시 세 끼는 못 먹어도 삼시 두 끼는 꼭 먹어야 한다. 아침은 사실 밥맛도 별로 없어 빵이나 우유로 때우는 것이 보통이다. 거기에 모닝커피를 한 잔 걸치면 더 산뜻하다. 하지만 늙은이들은 식탐이 강해 뭔가 자꾸 꾸역꾸역 먹으려 한다. 어떤 늙은이는 아침에도 꼭 밥을 먹으려 해서 자녀들을 괴롭힌다. 그런 행태는 실버인 내가 봐도 아니다 싶다. 젊은이들이 잠이 오죽 많은가? 늙은이들이 제 젊은 시절은 기억도 안 나는지. 젊을 땐 충분히 자고, 일도 열심히 하는 때다. 늙은이들은 그런 자녀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 행복에도 강제성이 좀 들어가야 한다. 자유방임은 행복이 아니다. 행복은 노력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기독교인이 아니라 행복 전도사는 못 된다. 그러나 경험상 행복의 조건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행복의 조건은 배려다. 늙을수록 자기중심적 사고를 갖기 쉬운데, 이를 과감히 버리고 상대방을 위해서, 아들 며느리를 위해서, 후속 세대를 위해서 무엇인가 배려한다면 행복은 저절로 당신 곁으로 찾아온다. 그렇게 하면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도 카카오톡이 오고, 그에 대한 답으로 예쁜 사진도 보내면서 서로 마음을 튼다. 거기엔 어떤 흑심도 없다. 그냥 잘 계시는지, 잘 있는지, 그것만으로도 서로 만족이다. 어여쁜 우리 아이들, 힘들어도 힘들다고 하지 않고, 늘 괜찮다고 하고, 아빠 건강하시라고 해 주는 그 마음, 그 마음이 곧 나에게로 와 나는 건강하고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이심전심의 건강, 그게 최고의 행복 아닌가?

인생, 사는 거 뭐 별것도 아니다. 하루하루 눈 뜨면 일어나,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여 각자 주어진 할 일을 하면 된다. 나는 이래 뵈도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뭔가 새로운 것, 예쁜 것, 특이한 것, 즐거운 것, 그게 물건이든, 책이든, 썰렁한 농담이든, 사람들은 나의 언행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요즘 며칠 회사 선배 현수형이 나에게 준신 책을 정리하고 있다. 내가 필요한 종류의 책이 많이 들어 있다. 현수형은 나와 생각이 좀 비슷했나 보다. 중국의 역사와 철학, 내가 필요했지만 사지 못한 책들이 현수형의 문고에 들어 있다. 현수형이 주신 책을 읽는 것은 그냥 식사가 아니라 진지를 잡수시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날마다 식사보다는 진지를 잡수시는 게 낫다. 식사에는 정성이 덜 들어가지만 진지에는 정성이 더 들어가기 때문이다. 나의 진지 구분 기준은 정성이다. 정성이 부족하면 호박떡도 선다고 하지 않던가? 도서관의 만족 기준은 곧 배려와 정성이라고 셍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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