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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쩍벌남

016. 6. 21(화)

쩍벌남

지하철을 타보면 자리 차지를 많이 하고 앉아 있는 뚱뚱한 남성을 흔히 볼 수 있다. 덩치가 좋은 남성들이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열차의 좌석은 보통 체격의 남성이 앉기에도 좁다. 좌석이 다 찰 경우는 옴짝 달싹 못하고 앉아 있어야 한다. 잘 못 움직였다간 손과 팔이 옆 승객의 팔이나 옆구리에 닿기가 쉬워 본의 아닌 오해의 소지도 생긴다. 그래서 나는 지하철에서는 가급적 서 있는 편이다. 서 있으면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균형 잡는 연습을 할 수 있어 체형 관리에도 좋다. 나는 강의를 오래 해서 그런지 서 있어도 다리가 별로 아프지 않다. 그래서 가끔 노약자 석에 앉아 있다가도 나보다 더 진전된 실버가 오면 선심을 쓰듯이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는 여유도 부릴 수 있다.

그런데 지하철에서 좀 보기에 거북한 것은 체격이 좋은, 별로 늙지도 않은 남성이 다리통을 쩍 벌리고, 2인분으로 앉아 있는 경우이다. 덩치로 보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겸손한 구석은 좀 있어야 할 텐데, 미안하거나 겸손한 표정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땐 좀 무식하게 보이기도 한다. 거기다가 전화까지 큰 소리로 해대면 조폭이 아니라도 조폭같이 보이기도 한다. 이런 남자를 두고 ‘쩍벌남’이라고 하는가 보다.

 우리는 남녀 누구나 공동체에 살아가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 공공윤리를 지켜야 한다. 즉 배려와 양보의 미덕을 실천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미덕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운전 질서도, 승차 질서도 남에 대한 배려는 잘 보이지 않는다. 내리기 전에 밀고 들어오는 승객들의 야만적 행동, 위험천만한 보복 운전, 우발적 폭력으로 인한 인명의 살상 등은 모두 남에 대한 배려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야만이다. 공동체 윤리의 실천문제는 체화되지 않으면 발현되지 않는다. 가정교육에서, 학교교육에서 윤리가 체화되어 있어야 사회에서도 자연스럽게 발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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