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20(월)
숙박 인심
“일곱 식구 단칸방에서도 자고 가라던 그 인심, 그게 인문학이야, 이 사람아.” 나는 오늘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예전의 경험 때문이다. 예전에는 웬만해서는 여관에 가서 잠을 자지 않았다. 일단 그 도시에 사는 일가친척을 찾아보고, 동네 살던 이웃 집 자녀들을 찾아보고, 연락도 안하고 무조건 찾아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면 흔쾌히 그럼요, 잘 오셨어요, 누추하지만 주무시고 가셔요. 이렇게들 맞이해 주었다. 그러면서 일부러 밥도 해주고 라면도 끊여주고. ‘가난한 평화’ 시대의 인심은 어찌 그리 좋았는지. 내가 초등 및 중학교 때 그리고 고등학교에 갓 들어가서도 경험했던 일이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 그때는 벌어졌었다. 지금은 아들 집에 가기도 미안한 시절이 되었지만 옛날에는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인간을 인간으로 대접해 줘 방문이 두렵지 않고 오히려 반갑게 정담을 나누는 좋은 기회로 삼았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인간사회가 있었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다.
과거 타령하는 것은 별로 달갑지 않겠으나 내 기억으로는 그랬다. 그러나 오히려 이웃보다 친척들은 이해관계를 따지고, 충고한답시고 나무라고 해서 스트레스를 주었기 때문에 친척집에는 가기가 싫었던 기억도 있다. 한 번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의지할 곳이 없어 어머니가 경상도에 이사를 가자고 하셔서 단출하게 짐을 싸가지고 이사를 갔었다. 이사를 가니 가장 가까운 친척인 50대 사촌 형님이 반가워하며 자가가 관리하는 산에서 나무를 해다 때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바로 그 산에 가서 내가 나무를 한 짐 해가지고 왔는데, 이튿날 사촌 형이 어머니한테 와서는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었다. 기껏 말려 놓은 곳에 가서 좋은 나무만 골라서 해 갔으니 앞으로는 그래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어 나는 다시는 그 산에는 가지 않았고, 얼마 후 원래 살던 충청도로 유턴 이사를 해버렸다. 친척은 내가 잘 살 때 좋은 것이지 내가 못 살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며 스트레스만 준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친척 보다는 이웃사촌이 훨씬 낫고 인간적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렇다. 이웃사촌, 정말 인간적인 분들이었다. 월사금은 못 대주지만 밥을 주고, 과일을 주고, 옷을 주고... 진정으로 성원을 보내주던 이웃들, 그들은 진정한 인간들이었다. 지금도 시골에 그런 인심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 분명 있는 곳이 있을 것으로 믿고 싶다. 그런데 나는 어제 텔레비전을 보다가 미국의 한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이 아프리카 사람들이 맨발로 다니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파서 신발 200 몇 켤레를 모아서 아프리카에 보낸다는 뉴스를 듣고 기분이 째지도록 좋았다. 그리고 텔레비전의 화면에 나온 그 어린이를 보고 아이 착해라, 예쁘고 기특해라, 하며 중얼거렸다. 그 어린이의 마음이 참 인간의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 경제, 사회의 고학력 인사들은 되래 참인간에서 멀어져만 가고 있으니 안타깝다. 여나 야나, 특히 여. 왜 통 큰 정치를 못하고 꼴사나운 계파갈등만 하고 있을까? 이해가 안 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 사회에서 아마 ‘한정치산자’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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