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11(월)
방위와 방위
방위方位도 방위고, 방위防衛도 방위다. 방위方位는 동, 서, 남, 북의 네 방향을 기준으로 하여 나타내는 어느 한 쪽의 위치를 말하고, 방위防衛는 적의 공격을 막아서 지킨다는 의미로 전에 보충역으로 고향에서 복무하던 군인을 말한다. 한국어사전에 있는 뜻풀이다. 그리고 둘 다 의미는 괜찮은 것 같다. 우리는 방위를 알고 나 자신을 방향잡고, 방위를 알고 나라를 지켜야 한다. 그냥 국가에서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하라 하니까 무턱대고 근무를 서는 것이 아니라 방위를 알고, 방위를 서야 했었다. 그런데 나의 방위시절에는 그런 소견이 잘 돌아 나오질 않았던 것 같다.
1975년, 그때 나는 전화국 공무원이었다. 그런데 군복무 전이라 국가에서 부르면 언제든 휴직을 하고 군에 가야 했다. 나는 사실 현역병으로 가고 싶었지만 부선망단대독자로서 홀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국가의 혜택명령을 물릴 수 없었다. 보충역, 정말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병무청에서 방위소집통지가 나와서 하는 수 없이 훈련을 받고 면사무소가 있는 예비군 중대본부에 배치되어 늙은 중대장 밑에서 예비군 행정사무를 보았다. 그런데 아는 사람을 만나면, 야, 너 방위 서냐? 하고, 위로 반 놀림 반. 나를 아는 처녀들이 쳐다볼 때도 내가 남자답지 못한 것 같아 좀 계면쩍었다. 그런데 대전 대덕에서 한 방위친구가 전근을 왔다. 그 친구는 나보다 체격도 좋고 힘도 좋았다. 다행인 것은 그 친구와 내가 단박에 친해졌고, 또 나의 썰렁 개그가 그에게 잘 통했다는 것이다. 어떨 때는 나보다 한 수 위의 개그를 구사해서 나를 웃겼다. 지금 이미 40년이나 흘렀는데 아직도 서로 연락하고 지내는 걸 보면 그나 나나 심성은 착한 모양이다.
얼마 전 약속한 대로 오늘 그 친구가 왔다.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도서관에서 휴롬 주스기로 배 주스를 갈아 마시며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었다. 그런데 내가 박사라고 친구답지 않게 나를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말을 예전같이 마음 놓고 하지 않고 조심스러워 했다. 뭐 레벨이 안 맞는다나 뭐라나. 그래서 내가 박사 아무 것도 아니야, 엷을 박자라 모르는 게 너무 많거든, 전과 같이 맘 놓고 이야기 해, 그게 편해, 하고 마음을 풀어주었다. 사실이 그랬다. 학위라는 것은 다 형식인데, 우리사회가 너무 형식으로 흘러 뭐 대단한 것처럼 여겨서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실력 없는 나일론 박사가 얼마나 많은가? 교수도 실력 없는 교수가 얼마나 많은가? 인분교수, 성 교수, 얌체교수, 이상한 사람이 너무 많다. 나는 학위를 받을 때 까지는 무지하게 어려웠지만 일단 받고나서는 허탈감에 빠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는데 문과대학 소속이라 문학박사 타이틀을 주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수필은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니 수필을 주로 썼다. 스스로도 쓰고, 누가 써달라고 해서 쓰고, 그러다 보니 글이 조금씩 는다는 느낌도 들긴 들었다.
그 친구에게 순대를 먹을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답 왈, 내안에도 순대가 있으니 순대로 순대 채우지 뭐, 하는 것이다. 여전히 허심한 썰렁 개그다. 순대를 맛있게 하는 가락동 함흥순대 집에 가서 판을 벌렸다. 소주 각일병과 순대 안주, 그리고 공기 밥이다. 내가 짜서가 아니라 이정도면 우리에겐 훌륭한 한 끼로 이신점심 통했다. 그 친구는 너무나 자연스럽다. 우린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해가며, 사는 이야기도 해가며 어느 사이 시간은 흘러 저녁 8시가 넘었다. 순대 집에서 건아한 상태로 나와 다시 나의 도서관으로 왔다. 오는 길에 그 친구가 맥주와 오징어를 또 샀다. 그걸 또 마신 후 내가 술김에 제안을 했다. 우리 노래방에 가볼래? 그래, 가보자, 노래방비는 내가 쏠께. 그 친구 대답이 거침이 없다. 그래서 또 노래방에 가서 흘러간 노래를 마음껏 목이 터져라 불렀다. 그리고는 10시가 넘어 그 친구를 부자 되라고 부천으로 보냈다. 오늘 하루 정말 인간적으로 행복했다. 세상 모든 인류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