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10(일)
보리밭과 보리밥
보리밭 사이 길로 걸어가면 임이 부르는 소리 있어 발을 멈춘다. 우리 가곡이다. 옛날에 들판에서, 산에서 우렁차게 불러대던 가곡 중 하나다. 그 노래를 부르며 보리밭을 바라보면 더 실감이 났다. 엄동설한을 견디고 파릇이 올라와 우리에게 이삭을 내밀던, 그래서 보릿고개를 넘게 해주던 그 고마운 보리다.
그런데 그 때 사람들은 보리밥을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다. 모두 흰 쌀밥을 먹기를 소원했지만 쌀이 귀해 잡곡을 섞어 먹어야 했다. 특히 꽁보리밥 먹는 걸 제일 싫어했다. 그래서 어떤 친구는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물으면 쌀장사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사실 보리밥은 억세서 나도 싫어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보리밥을 하시면서도 그 가운데다 귀한 쌀을 한주먹 넣고 밥이 다 되면 그 쌀밥 부위만을 주걱으로 싹 도려내어 퍼서 나에게만 주셨다. 그래서 나는 그게 당연한 건줄 알고 염치없이 아버지 앞에서 그 쌀밥만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한테, 누나한테, 어머니한테 미안해 죽겠다. 눈물이 나도록. 그래서 이제 보리밥에 대한 거부감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 이유 하나는 예전의 내 모습이 미안해서이고, 또 다른 하나는 보리밥이 이제는 웰빙식으로 그 본연의 위치를 찾았기 때문이다.
오늘 점심에 아들 며느리가 와서 보리밥이 어떠시냐고 물었다. 그래서 좋지, 좋아, 좋아 하고 동의 했다. 나는 아들 며느리의 메뉴제안에는 반드시 동의한다. 내가 저렴한 곳에 가서 먹자고 해도 그들이 내말을 들어 준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더 좋고, 더 비싼 걸 사주려고 하는 그 효자 효부의 마음을 고맙게 여기기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오늘은 좀 색달리 보리밥을 제안하니, 속으로 이제 좀 소비를 줄이려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암, 그래야지, 그럼, 그럼. 복정역을 지나 보리밥 집으로 갔다. 주문 권은 물론 나에게는 없다. 사장님, 보리밥 두 개랑 요, 제육 하나 주세요. 아들 며느리가 주문을 했다. 아버님, 동동주 한잔 드실래요? 며느리가 물었다. 그 말에 대해서는 내가 강력 부정했다. 아냐, 아냐, 낮이라 안 돼. 그 말은 내말이 통했다.
보리밥에 비지랑 각종 야채를 비벼 맛나게 먹고 있을 즈음 상추쌈과 제육구이가 나왔다. 고기와 보리밥과 야채와 누룽지 숭늉까지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함포고복했다. 이제 보리밥은 예전의 보리밥이 아니다. 가격도 싼 게 아니었다. 메뉴판의 가격을 보고는 아까 얘들이 소비를 줄이려나보다, 는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 수 있었다. 과거 쌍 팔 년도와 달리 이제 보리도 대접을 받는다. 과거에는 보리가 보리심을 심어주기도 한 것 같은데, 지금도 보리심을 심어주는구나, 하며 속으로 고마운 웃음을 지어본다. 식사 후 식당 마당 끝에 핀 접시꽃을 배경으로 스마트폰으로 서로서로 사진도 찍었다. 무덥지만 행복하고 고마운 한 낮, 나는 지금 내 도서관에서 선풍기를 돌리며 이 글을 쓴다. 좀 있으면 50년대 내 친구가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