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검정고시
아이구, 또 떨어졌네,
벌써 세 번째다. 다른 과목은 성적이 제법 잘 나오는데 수학이 매번 30점에서 왔다 갔다 한다. 40점미만 과목이 없고 평균 60점만 넘으면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에 합격할 수 있는데, 매번 수학 때문에 떨어진다. 그는 또 실망했다. 그러나 포기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놈의 수학을 어떻게 하나, 대전에 나가 입시학원 단과반이라도 한 1년 다닌다면 모를까 <수학정석>을 아무리 보아봤자 도통 이해가 안 된다. 맞출 수 있는 문제는 그나마 중학교에서 기초를 좀 배운 것들이다. 수와 식, 집합, 인수분해. 근의 공식, 복소수, 삼각함수, 뭐 이런 것들은 좀 맞출 수 있다. 그 외에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시그마, 확률 통계, 수열, 미적분, 이런 것들은 도통 혼자서 풀 수가 없다. 그러나 방법은 없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에 어머니가 옷 보따리장사 좀 해가지고 겨우 목구멍에 풀칠하고 사는데, 대전 나가 학원을 다닌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낸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쑥덕거렸다. 지어미는 자라목이 되도록 보따리 이고 이 동네 저 동네 옷 팔러 다니는 데, 다 큰 놈이 천날만날 방구석에서 틀어박혀 무슨 정승판사가 되려는지 원, 외아들 호호불어 키워봤자 아무소용 없다니께. 중학교 서무과 소사라도 다니지, 그것도 몇 달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저래 들어 앉아 있으니 답답다 답답어, 방 안에서 작은 소반을 다리에 끼고 공부하던 그는 밖에서 아낙들이 흉보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다. 해명이나 설명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그냥 못들은 척하고 강의록을 보며 밑줄 긋고, 외우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수학만은 안 된다. 그런데 마침 대전 도마동에서 먼 일가친척이 병아리 철망장사를 한다는 소문이 지인을 통해 들려왔다. 그날 그는 어머니께 졸랐다. 엄마, 나 대전 가서 그 친척집에 있으면서 한 달만 수학학원 좀 다니면 안 될까? 아들을 고등학교에 못 보낸 죄로 엄마의 대답은 늘 긍정적이다. 그래라. 내가 먼저 그 집에 가서 말해볼게, 한 달에 쌀 한말 주면 안 되겠나, 바로 어머니는 물건 하러 대전 중앙시장에 나가는 길에 그 집에 들러 이야기를 꺼냈다. 그 집서도 마침 노는 방이 하나 있는데, 다른 친척 열여덟 살 먹은 아가씨가 방직공장에 다니면서 그 방을 쓰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으면 와 있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내심 기뻤지만 아가씨와 같이 방을 써야 된다는 말에 걱정 반, 기대 반하며 도마동으로 갔다. 친척 형님 내외분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바로 청산학원 수학 단과 반에 등록했다. 그는 도마동에서 보문산 입구까지 걸어서 학원을 다녔다. 걷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계룡산 중턱에서 10 리나 떨어진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9년 동안 다녔으니 다리는 이미 단련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본의 아닌 ‘첫날밤’이 왔다. 그 방을 먼저 선점한 낯선 아기씨와 쑥스러운 인사를 나누고는 그 처녀는 저 쪽 벽에, 그는 이쪽 벽에 달라붙어 참을 청했다. 가슴이 이상했다. 그러나 불을 켜놓고 공부할 수도 없어 억지로 숨을 죽이고 있었다. 도덕과 윤리로 무장한 시기라 한 달 내내 그 방에서 별다른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라는 명언을 떠올리며 그는 불뚝거리는 센터의 소용돌이를 참아냈다. 단과 반 수학 강의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학원 선생의 강의는 말도 빠르고, 원리가 아니라 문제풀이 기법 위주로 대충 대충 지나갔다. 학원에 한 달 다녔지만 수학 공부에 아무런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피곤하고 밤에는 낯선 아가씨와 같은 방을 쓰려니 맘대로 공부할 수도 없고, 더 열악한 환경이 되어버렸다. 결국 학원은 한 달로 끝냈다.
맛뫼기 소설이었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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