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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교수임용의 정치


교수 임용의 ‘정치’

옛날이야기다. 모 대학에 전임교수 임용 지원을 했다. 서류심사에는 통과되었다. 그 다음 단계에 전공적합성 심사가 있었다. 전공적합성 심사는 그 대학 그 학과에서 뽑고자 하는 전공분야와 일치하느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실질심사’이기에 일단 그 관문을 넘어서야 다음을 기대 할 수 있다. 서류요건은 갖추었지만 그 대학 그 학과의 원하는 전공과 맞지 않으면 뽑지 않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전공심사 발표 예정일은 2008년 9월 29일. 그러나 예상외로 일찍 핸드폰을 통해 메시지가 왔다. “교수에 임용되게 되지 못한 점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발표 예정일 보다 나흘이나 앞당긴 날이다.

나는 사실 원서는 냈지만 별로 기대하지는 않았다. 우리 한국 대학의 교수 임용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들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고를 내고 표면적으로는 공정한 것처럼 포장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물밑작업’이라는 것이 있고, 그것은 대부분 기득권을 가진 전임교수들의 정치적 ‘작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어느 특정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대학 전 전임교수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다못해 비전임 계약직 교수를 임용하는 경우에도 ‘물밑’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이 우리나라 대학의 교수 임용의 ‘정치’다.

모든 대학의 교수들을 싸잡아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정직하고 양심적인 전임교수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분들은 항상 ‘정치력’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에게 헤게모니를 빼앗긴다.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임 교수들은 서로 다 존중하고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것 같지만 그 내면의 실상은 매우 치졸한 면이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도 서로 싸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학문을 했다면 정말 인간적이라야 할 텐데 실제상황은 극히 비인간적이다. 이권, 실권, 기득권 등 온갖 권한을 놓고 죽기 살기로 자리다툼을 한다. 신임교수 채용에 있어서도 서로 자기 사람, 자기 학연, 자기 심부름꾼을 끌어오려고 안간힘을 쏟는다. 자기 사람이 아니라면 당연히 ‘플러스알파’ 요인이 있어야 한다. 아니 자기사람이라도 ‘플러스알파’는 항상 수반된다.

‘기득권’을 가진 교수들은 매우 ‘정치적’이다. 보직(학장, 처장, 총장 등)에 대한 욕심이 강하다. 장관이나 정부기관 요직에 부름받기를 좋아한다. 교수직을 발판으로 국회의원이나 주요 권력 단체장으로 가려는 사람도 많이 있다. 교수직은 유지하나 그들이 좋아하는 최종 목표는 저 높은 권력이다. 그게 안 될 경우는 안정적인 직장인으로 학교에 안주한다.

그들은 후배 교수 채용에 있어서도 ‘물밑작업’을 필수로 여긴다. 지원자가 미리 찾아가지 않으면 100% 안 된다. 그들은 자의적 판단에 따라 “이사람 아니다 싶으면 아니다.”이다. 그 판단 근거는 매우 감정적이고 애매모호하다. 학위논문 이외에 논문 한편 없어도 합격되고, 논문이 아무리 많아도 탈락된다. 미리 찾아가 상의한다 해도 지원서 내지 말라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정이 있어도 합격된 사람들은 함구한다.

정말 대학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이래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정말 합리적, 객관적, 공개적으로 교수를 뽑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학연, 지연, ‘금연(金緣)’을 떠나 교육적으로 제 자리에 꼭 맞는 사람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대학이 대학다워지려면 교수임용 제도의 기본 틀부터 근본적으로 다시 짜야 할 것 같다. “是韓國大學 放聲大哭 !”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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