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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한국 도서관의 위상과 진로

 

한국 도서관의 위상과 진로

 

도서관의 구성요소와 그 품질

도서관의 구성요소는 건물, 장서, 사서, 고객, 그리고 이를 총괄 관리하는 경영이다. 이들 가운데 어느 한 요소라도 결여되면 도서관은 그 본질적 소임과 역할을 해내기 어렵다. 그런데 이 요소들을 한 단계씩만 더 들어가 관찰해보면 도서관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유를 금방 알아낼 수 있다.

첫째, 건물이 있다고 다 도서관인가? 도서관의 목적이 아닌 건물은 도서관을 불안하게 하고 불편하게 만든다. 둘째, 장서가 있다고 다 도서관인가? 도서관의 목적에 맞게 제대로 선택, 활용, 순환되는 장서가 아니라면 그 도서관의 장서는 사장(死藏)된다. 셋째, 사서가 있다고 다 도서관인가? 전문성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장서와 고객을 충실히 연결시켜줄 수 있는 사서가 부족하다면 그 도서관은 침체된다. 넷째, 고객이 많이 온다고 좋은 도서관인가? 도서관을 놀이터나 공부방으로만 이용하는 사람들이 고객의 주를 이룬다면 그 도서관은 놀이터나 독서실에 불과하다. 다섯째, 도서관 관리자가 있다고 다 도서관인가? 도서관의 본질적 목적과 사서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정치경제적 논리로 도서관을 좌지우지하는 관리자들은 도서관을 왜곡시킨다.

 

도서관 경영자와 사서

이처럼 도서관의 요소들은 단순히 그 명목만 가지고는 도서관을 도서관답게 만들지 못한다. 도서관 구성요소의 각각에 명과 실이 공히 갖추어진 양질의 품질이 가미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요소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를 꼽는다면 단연 사서일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요소들은 모두 도서관 경영의 대상이지만 사서는 경영의 대상임과 동시에 경영의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경영은 사람이 하며 도서관 경영을 사서가 하는 것은 너무나 명약관화한 논리인 것이다.

하지만 한국 도서관의 현실은 이러한 기본적 바탕이 튼실하게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 공무원이 직영하는 도서관들은 오랫동안 몸에 밴 관료주의의 늪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직급 높은 관장이 사서가 아닌 경우가 많아 도서관의 한가함을 즐기다가 다른 힘센 자리로 잘도 전근해 간다. 사서공무원들도 사서답지 못해 번문욕례의 전통을 고수하면서 경직된 공공기관의 업무처리 행태를 답습하고 있어 경영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민간위탁도서관들은 더욱 가관이다. 위탁기관인 단체나 법인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운영비를 받아 사서와 기타 인력을 채용하고 건물과 시설을 자기들의 뜻대로 관리하는 특권을 누린다. 위탁도서관의 책임자들은 대개 도서관 경영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슨 관리공단이나 법인 단체의 학연, 혈연, 지연, 또는 전관예우에 의한 낙하산인사들이다.

 

전시성 이벤트보다 내실 있는 프로그램으로

한국사회는 중앙이고 지방이고 간에 아직도 비합리적 요소들이 판을 치고 있다. 예를 들면 지방자치단체마다 무슨 박람회나 이벤트에 몰두하면서 도서관들도 내실 없는 행사에 몰입하고 있다. 물론 꼭 필요한 이벤트도 있지만 선거를 의식한다든지, 다른 곳에서 하니까 따라 하기 바쁜 행사도 많아 보인다. 도서관의 행사가 전시행정이나 정치논리에 휘말리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도서관 경영의 본질에서는 멀어 보인다. 도서관의 행사는 평생교육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예를 들면, 행사를 하더라도 단발성 행사보다는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인문학 강좌나 청소년 멘토링 프로그램, 또는 독서능력 향상을 위한 어휘력 향상 프로그램, 수준 있는 북토크 프로그램 등 고객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을 위주로 해야 한다고 보는데 그런 프로그램은 매우 희귀한 것 같다.

 

우리나라 사서들의 위상과 진로

아직도 우리나라 사서들의 위상은 약하고, 진로 또한 불투명하다. 사서의 전문성 향상을 위한 대학교육의 역사가 이미 50여년이나 지났지만 사회에서 사서를 바라보는 눈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도서관 경영의 주체가 되어야 할 사서들이 다른 직종 높은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새우등이 터지고 있다. 도서관의 가야할 좋은 길이 빤히 보이는데도 그 길을 막는 힘센 존재들 앞에서 전문 사서들은 숨을 죽이고 있다. 사서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민간위탁 도서관 사서들은 또 다른 권력의 층층시하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젊으나 늙으나 비정규직, 계약직, 아르바이트, 자원봉사 등 고용불안에 허덕이면서 책과 도서관을 사랑하는 일념으로 오늘도 숨을 죽이고 있다.(2013.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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