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컬럼/컬럼

인문대학 해체론

‘인문대학 해체론’

사립문정작은도서관을 개관하고부터 종이신문을 구독하고 있다. 요즘은 대부분의 신문기사를 인터넷으로 볼 수 있으나 도서관에서 종이신문을 구독하는 이유는 첫째, 내가 좀 구세대라 종이매체에 더 익숙하고 친근감이 가기 때문이며, 둘째, 인터넷만으로는 놓치기 쉬운 중요하고도 알찬 기사를 종이신문을 통하여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신문 읽기를 통해 우리 사회생활의 모든 부면에 걸쳐 평생학습과 평생교육의 효과를 좀더 시사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2013년 6월 13일 목요일자 조선일보의 '만물상'에는 '인문대 해체론'이라는 제하의 박해현 논설위원의 글이 실려 있었다. 제목만으로도 귀가 솔깃하여 꼼꼼히 읽어보니 내가 평소에 하고 싶었고, 간혹 학생들에게 강조했던 생각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글쓴이는 송승철 한림대 영문학과 교수의 '인문대를 해체하라'는 글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다. "그는 교수 평가를 할 때 논문발표보다 '수준 높은 교양 저서' 출간을 더 높이 쳐야 한다고 했다. 인문학이 살아남으려면 학문의 소비자인 대중에게 인문학의 존재 이유를 입증해 보이는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쉽고 재미있게 글 쓰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그는 이어서 "하버드대 신입생은 한학기 적어도 세 편 에세이를 써야 한다... 하버드대가 사회에서 리더가 된 졸업생을 조사했더니 '성공비결은 글쓰기'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인문학 공부는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글쓰기를 익히는 과정이다.그러나 우리 대학엔 '글쓰기는 학문이 아니라 언어기술일 뿐'이라고 낮춰보는 이가 적지 않다...인문학 부활은 글쓰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사실 오늘의 인문학분야 학술 논문들은 대중이 읽기 어렵다. 글을 어렵게 써 놓았기 때문에 발표자나 심사자 또는 몇몇 전공자 이외에는 읽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논문이 발표와 동시에 학술지에 갇혀 사장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도 학자들은 그것이 학문의 '과학적 방법'이라고 어려운 틀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는 인문학이 더욱 대중으로부터 소외될지도 모른다. 지식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조차 철학이나 미학, 종교학, 역사학, 언어학, 문학, 교육학 등의 논문을 읽어낼 수 없다면 인문학이 대중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대중을 위해 쉽고 재미있게 쓴 인문학 저술들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쉽고 재미있는 글을 쓰기 위해 전제되어야 할 것은 수많은 인문고전을 철저히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고전으로 정평이 나있는 책들의 제목을 들은풍월로만 알고 있을 게 아니라 직접 책을 사서 골똘히 읽어보아야 한다. 읽고 메모하고 자기의 생각을 보태고 하는 독서의 과정이 있어야만 대중을 향한 인문학적 글쓰기도 올바로 진전될 수 있다. 고전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피상적인 상식만을 가지고 글을 쓴다면 쉽고 재미있는 글이 될지는 모르지만 고전에서 연유되는 진정한 의미를 왜곡할 소지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대중을 오도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문정작은도서관은 초중고 학생들과 함께 고전을 읽기위한 기초 작업으로 한문과 국어 영어의 어휘를 동시에 공부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달에 한권씩 고전을 함께 읽어나갈 계획이다. 천자문, 명심보감, 논어, 대학, 중용, 맹자를 몇 번이고 국어와 영어로 읽어나가다 보면 다른 어려운 고전도 읽을 수 있고 현대적으로 쉽고 재미있게 글을 쓸 수 있는 '문리'가 트이지 않을까 싶다. 독서와 함께하는 글쓰기를 생활화 해야만 기술적 글쓰기에 머물지 않는, 내용 있고 맛있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글. 이종권 2013년 6월 17일 오후 5시>  

 

 

 

 


 

 

 

 

 


 

'수필/컬럼 > 컬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 도서관의 위상과 진로  (0) 2013.09.29
도서관과 고시  (0) 2013.07.08
도서관의 '자격'  (0) 2013.06.04
도서관 정책칼럼 인간적 도서관의 꿈  (0) 2013.05.16
도서관의 정도와 정책  (0) 2013.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