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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도서관의 '자격'

 

제목을 ‘도서관의 자격’이라 한 것은 모 방송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서 따 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도서관의 자격을 정한 법률은 ‘도서관법’이라 할 수 있다. 도서관법 제2조에 규정된 ‘도서관의 정의’에는 “도서관이라 함은 도서관자료를 수집, 정리, 분석, 보존하여 공중에게 제공함으로써 정보이용, 조사, 연구, 학습, 교양, 평생교육 등에 이바지하는 시설을 말한다.” 라고 되어 있다. 이 조항은 ‘시설’로 끝맺음이 되어 있어 시설에 방점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도서관은 그 시설 속에 존재하는 책과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읽어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정보이용, 조사연구, 학습, 평생교육 등은 사람이 주체가 되어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활동이며 도서관은 인간과 인간, 책과 인간 사이를 원활하게 소통시키는 지적 생산의 활발한 무대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법조항만으로 제대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좋은 법이 있다 해도 사람들의 올바른 해석과 적용, 그리고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법은 무용지물이 된다. 반면, 좀 부족한 법일지라도 그 법정신을 올바로 해석하고 연구하며, 새롭게 가치를 창출하여 실천하려고 노력할 때 법은 그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 그래서 도서관법의 ‘법고창신’은 도서관법을 잘 해석하고 실천하면서 새 시대 도서관의 기능과 역할이 무엇인지를 지속적으로 연구, 개발하고 실천해 나가야만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도서관법에서 도서관의 자격을 규정해 놓긴 했지만 지금까지의 도서관현상을 전반적으로 살펴볼 때 우리는 사서전문직 역할의 중요성 인식과 사서와 고객, 고객과 고객의 관계 형성 과정을 너무나 간과해 온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이는 우리가 아직 도서관의 ‘필요충분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시설’만 있고 사서가 없거나 부족한 도서관이 아직도 많을 뿐 아니라 사서와 고객의 관계, 고객과 고객의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도서관이 부지기수이다. 따라서 진정한 ‘도서관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사서와 이용자의 대화가 일상적으로 활성화 되도록 활력경영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한 미디로 도서관은 시민 누구든지 책을 읽고, 대화하며, 평생 연구하고, 공부할 수 있는 인적, 정보적, 물적 여건을 갖추고 이들 사이에 활발한 소통이 이루어지도록 경영되어야만 진정한 ‘도서관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도서관은 도서관만을 위해 존재하는 단순한 ‘시설’이 아니다. 도서관은 훌륭한 인재와 지도자를 길러내기 위해, 모든 시민의 지적인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민주사회의 교육 문화적 기반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제33대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 대통령은 “모든 독서가가 리더는 아니지만 모든 리더는 독서가다(Not all readers are leaders, but all leaders are readers.)." 라고 말했다 한다. 또 법정스님은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배울 수 있는 책, 잠든 내 영혼을 불러 일으켜 삶의 의미와 기쁨을 안겨주는 책, 수많은 세월을 거쳐서 지금도 책으로 살아 숨 쉬는 동서양의 고전들(법정 ’아름다운마무리‘ 120쪽)”이라 적어 놓았다.

이 모든 현철 선인들이 천명한 독서활동과 평생교육을 제대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도서관 전체가 모두 다 활성화 되어야 한다. 이 활성화는 사서의 활성화, 자료의 활성화, 고객의 활성화로 구성된다. 어느 것 하나라도 활성화되지 못한다면 도서관은 제 기능을 발휘하기 못하는 불활성 시설에 불과하다. 이들이 모두 활성화된 도서관이라야 비로소 ‘도서관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글. 이종권. 문학박사(문헌정보학), 문정작은도서관장, 건국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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