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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무간지옥

  무간지옥(無間地獄)

 

무간지옥이란 문자 그대로 ‘간격이 없이 꽉 막혀있는 지옥’을 뜻한다. 지옥(地獄) 그 자체만으로도 땅(地)속에 있는 옥(獄)이므로 답답할 텐데 간격이 전혀 없는 지옥이라니 그곳에 가면 아마 꼼짝달싹 못하는 곳인가 보다. 사전(辭典)에 무간지옥을 찾아보면 “팔열(八熱) 지옥(地獄)의 하나, 고통(苦痛)을 끊임없이 받는 지옥(地獄)”으로 되어 있다. 틈새가 없어 꼼짝 못하고 땅속에서는 화산이 끓고 있으니 끊임없이 고통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잘 때 가끔 가위눌림이 올 때가 있다. 이때의 느낌은 무엇인가 귀신같은 것이 나타나 온 몸을 꽉 누르고 있어 아무리 물리치려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소리를 질러도 신음소리 정도 나오는데, 다행히 옆에 누가 있으면 그 소리라도 듣고 몸을 흔들어 깨워주지만 혼자 자는 경우에는 그냥 끙끙거리다가 어느 순간 풀려난다. ‘귀신작용’인지 ‘정신작용’인지 분명치 않으나 가위눌림은 매우 기분 나쁜 현상이다. 무간지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필자는 가위눌림을 연상했다. 간격이 없어 꼼짝 못하는 것과 가위눌림으로 꼼짝 못하는 것은 비슷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꼼짝 못하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은 ‘신체의 자유’든 ‘정신의 자유’든 자유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자재로 활보할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고, 자유자재로 사유할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은 곧 자유의 구속이다. 옥(獄)이 자유를 구속하는 곳인 만큼 무간지옥은 자유를 더욱 구속하는 장소일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서나 죽어서나 자유를 구속받는 무간지옥을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종교에서는 이생과 내생이 있다고들 한다. 이생은 좀 고통스러워도 내생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면 극락이나 천당에 간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생은 내생을 위해서만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생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 더욱 행복한 삶이라고 본다. 그런데 우리는 이생 안에서도 많은 ‘무간지옥’을 짓고 있다. 얼마 전(2010년 3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집을 온통 기이하게 생긴 나무 등걸로 가득 메워놓아 주방이나 화장실에도 드나들기 어렵게 살고 있는 한 기인(?)이 소개되었다. 기이하게 생긴 나무를 모아서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서라 한다. 필자는 이를 보고 “나무로 무간지옥을 만들었군.”하고 중얼거렸다.

필자는 2010년 4월 또 이사를 했다. 꽤 넓은 공간인데 살림살이들이 뭐가 그리 많은지 짐을 풀어 정리를 하는데 지나다닐 틈이 없었다. 문득 ‘무간지옥’이 생각났다. “아 이 물건들이 무간지옥을 만드는 재료로구나. 물건이 많아질수록 무간지옥의 ‘준공’도 더 빨라지겠구나. 버릴 것을 골라 과감하게 버리자. 의자, 식탁, 옷, 신발, 책, 아니 책은 아니야” 결국 책은 또 버리지 못하였다. 그러면서 ‘무간지옥’에서도 생명을 제조하는 나무뿌리를 상상해보았다. 뿌리는 분명 땅속에 있다. 나무가 자랄수록 뿌리도 땅 속으로 더 깊게 들어간다. 뿌리에게는 땅속이 무간지옥이 아니라 생명의 원천이다. 나무는 지옥을 버리면 생명을 잃는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나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래 내가 나무라면 책은 나의 뿌리야, 책을 버리면 나의 생명이 시들 거야. 난 다른 물건은 다 버려도 책만은 버리면 안 돼. 가능하다면 후손들아 내가 죽으면 책으로 무간지옥을 만들어주렴. 책으로 만든 무간지옥에서는 ‘신체의 자유’는 누릴 수 없어도 ‘정신의 자유’는 누릴 수 있을 거야.”

물건에 애착을 가지면 무간지옥에 갈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그러나 책에 애착을 가지면 책으로 둘러싸인 무간지옥에 갈 것이니 걱정이 덜 된다. 그러나 걱정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드넓은 자연의 우주가 바로 극락인가보다. 맑은 공기 마시고 자유로이 활보하며 날아다닐 수 있는 이 위대한 공간(SPACE). 이 공간(空間)이 바로 천당(天堂)이며 극락(極樂) 아닐까?(2010.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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