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1일 법정스님이 타계하셨다. 세속 나이로 78세. 고령화 사회가 된 요즘으로 보면 그리 장수하시지는 못했다. 아마도 ‘고행’이 더 많았을 ‘무소유의 수행’ 때문인지 모른다. 대학 시절에 학교를 버리고 수행자의 길을 선택하신 스님은 일생을 모든 걸 버리고 사신 게 틀림없다. 필자는 법정스님을 친견하지 못했지만 문명과 자연을 넘나드는 향기로운 글을 통해 스님의 거룩한 종교적 정신을 간접적으로 체험해왔다. 불교 수행자이지만 불교에 갇히지 않고 천주교, 기독교 등 다른 종교와 소통과 화합을 시도하고 실천하셨던 ‘달관의 종교관’은 모든 종교인 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본받아야 할 정신자세라고 생각된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법정스님의 책 ‘무소유’에 대해 김수환 추기경님은 “법정스님의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주장한다 해도 스님의 책 ‘무소유’ 만큼은 소유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한다. 그만큼 소중한 말씀을 담은 책은 누구나 가지고 싶은 사람이 소유, 음미하며 각자의 삶 속에서 실천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사회적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는 뜻으로 새겨진다. 사실 법정스님의 책은 나오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라 웬만한 집에는 거의 한권 이상 보유할 정도라 한다. 그만큼 스님의 책은 종교를 불문하고 누구나 좋아하는 책이 되었다.
그런데 스님이 입적하신 다음 언론을 통해 발표된 스님의 유언을 접하고 조금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공개된 스님의 유언 중 제2항은 이렇게 컴퓨터로 찍혀 있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롭게’에 주어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토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에 가져가지 않으려 하니 부디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 주십시오.”
여기서 의아하게 생각되는 것은 두 번째 문장이다. 그동안의 글을 ‘말빚’이라 하시고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으시겠다니 그럼 스님은 그동안 채무자였고, 스님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채권자’였단 말인가? 지극히 겸손하신 말씀이지만 스님의 경지를 잘 모르는 속인으로서는 너무나 황당한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스님이 남기신 글은 출판이라는 유통과정을 통해 공표되어 웬만한 도서관에는 거의 다 소장되어 있다. 따라서 이제 스님이 원하든 안하든 스님의 글은 이미 사회화되어 회수할 수 없게 되었다.
필자는 좋은 글을 써서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하는 것은 ‘말빚’이 아니라 ‘말보시’라고 생각한다. 수행과 정진의 과정에서 얻은 지혜의 말씀들을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인간사회를 맑고 향기롭게 할 수 있다면 그게 곧 ‘말보시’가 아니고 무엇일까? 불교는 석가모니의 수행과 ‘법보시’에서 발아된 종교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2500여 년 전에 설법하신 말씀들이 지금까지 대를 이어 전파됨으로써 오늘의 불교가 빛을 발하고 있고 부처님의 ‘법보시’에 기대어 중생들은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하는 길을 안내 받고 있다.
법정스님의 글들은 우리의 마음을 쉽게 일깨워준다. 평범하지만 비범한 지혜의 말씀들을 전해준다. 종교를 떠나 인간의 삶이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지를 안내해 준다. 스님은 자신의 글을 ‘말빚’이라 하셨지만 독자들은 스님의 글을 ‘감로수’로 받아들인다. 이런 스님의 글을 더 이상 출판하지 않는 것은 부처님의 뜻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생전의 스님의 뜻에도 합당하지 않은 것 같다. 스님의 후계자들은 스님의 유언을 따르지 않는 것이 스님에게 누가 될 것이라고 걱정하실지 모르나 진정으로 부처님의 뜻이 무엇이고 법정대종사의 큰 뜻이 무엇인지를 잘 해석하여 스승이 남긴 지혜의 말씀을 계속 전파해야 할 것이다. 출판에서 나오는 수익금 전액을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사용한다면 스님께서도 기꺼이 허용해 주실 것으로 믿고 싶다.
“법정스님, 스님의 말씀을 대대로 전하는 것은 ‘말빚’이 아니라 ‘법보시’라고 생각합니다. 도서관에 보존 활용되고 있는 모든 책들은 후세를 위한 지혜의 유산입니다. 저는 책과 도서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스님의 책을 포함한 역대 현자들의 정신적 유산이 후세에 영원히 전해지기를 기원합니다. 스님처럼 개체 인간으로서는 모든 것을 다 버릴지라도 역사와 사회 속에 존재하는 책과 도서관만큼은 영원히 버릴 수 없다는 점을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스님, 극락에 계시어도 중생을 위해 ‘말빛(言光)’을 계속 비추어 주십시오. 아멘, 나무석가모니불...”(2010. 3. 21) (화계법보 2010. 3-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