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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저서/논문

그로컬(glocal)시대의 시민과 도서관

목차

1. 그로컬시대의 전개와 그 명암
2. 그로컬시대의 시민생활, 그 깨달음과 실천
3. 새 도서관제도의 모색, 시민과 더 친근한 도서관
4. 사서선생님, 도서관의 교육 경영자
5. 도서관, 시민의 평생교육 광장으로  

   언제부터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최근 들어 ‘그로컬’ 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여 관공서나 대학의 기획문서에 유행처럼 쓰이고 있다. 그래서 그 의미를 알아보니 ‘글로벌(global) 과 로컬(local)의 합성어’이며, 우리말로는 ‘세방(世方)’이라고 한다는 인터넷 설명이 나왔다. 외래어라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의미상으로는 정말 그럴 듯한 말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에서 세계화와 지방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사람들은 물리적인 교통을 넘어서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사정없이 교류하고, 세계 모든 지방의 문화가 복잡하게 섞여 들어 다문화 ‘융합’을 향해 빠른 행보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우리의 삶의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모되고 있다. 우선 눈에 보이는 외형적 모습부터 이제 어느 나라 도시인지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내면을 지배하는 언어와 문화도 이제 무엇이든 새롭고 유용한 것이면 교류하여 쓸 만큼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가야금이 비틀즈 음악을 연주하고, 우리가 개발한 조그만 반도체 칩이 세계의 정보를 담아 ‘내손안의 도서관’을 구현할 수 있고, 세계의 언어가 검색과 동시에 자동 번역되며, 언제 어디서나 나의 휴대폰으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어가는 이러한 놀라운 변화는 가히 ‘신의 기적’을 현실화시키고 있는 것만 같다. 1960년대에 필자의 선친께서는 앞으로 ‘앉아서 천리를 보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언처럼 말씀하셨는데, 이제 천리가 아니라 몇 억만 리 까지도 보게 되었으니 바야흐로 인간세상은 모든 것이 기적처럼 변하는 신의 경지로까지 치닫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인간 세상이 신의 세계로 한발 한발 다가간다고 해서 마음 놓고 좋아하고 있을 일만은 아니다. 한쪽으로는 이렇게 신의 기적처럼 변화되어 가는 사이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느 구석에서는 또 다른 ‘악신’이 지켜보며 어떠한 보복을 준비하고 있는지를 아무도 알 수 없는, 인간은 아직 ‘무지한 신’이기 때문이다. 그 단초는 바로 환경오염과 지구 온난화와 같은 크고 작은 재앙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구의 온도가 1도만 상승해도 개구리와 같은 양서류가 죽고 바다 속의 산호초가 사라지는 등 생태계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들어 기후 변화가 확실히 감지되고 있다. 안전지대였던 동해한 영동지방에 때 아닌 돌풍과 물난리가 나는가 하면, 6월의 더운 날씨에 우박이 내려 농작물에 큰 피해를 주기도 했다. 또한 진도 4.0을 웃도는 지진도 가끔 우리 한반도를 노크한다. 온대몬순지역이라던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아열대 모순지역’ 으로 변화되어가는 것 같은 현상을 지금 피부로 느끼게 된다.

  이와 같이 그로컬시대가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로컬사회는 우리가 직면하는 시대의 대세이며, 앞으로 인류사회에 대체적으로 행복을 줄 것이지만, 반면에 우리가 대처해야 할 수많은 문제가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항상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아프리카 난민이 굶주리며 죽어가도, 그들이 문맹의 상태에서 허덕이고 있어도 대다수의 나라가 이를 방관하고 있는가 하면, 당장 내 코앞의 공기가 오염되고 있어도 검은 연기를 내뿜는 차를 보란 듯이 몰고 다니며 모든 오염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고 있는 이 한심한 인간들의 작태는 인류 전체의 큰 행복을 훼손하기에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우선 당장 나의 편리함을 추구하기에 급급한 이러한 근시안적인 행태는 그로컬사회의 보다 큰 행복을 훼손할 것이며, 나아가 지구라는 공을 어디로 굴러 떨어지게 할지 모르는 위험한 ‘자학행위’임을 우리들은 왜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이종권. 국회도서관보 2007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