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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이외수-그의 삶을 듣고 보니

얼마 전 문화방송 ‘무릎팍 도사’프로그램에 소설가 이외수 선생이 나왔다. 강호동씨가 재치 있게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등장인물에 대한 인생의 진면목을 솔직하고 코믹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그런지 이 프로그램은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외수 선생이 등장했다. 체중 48킬로, 얼굴이 쭈글쭈글한 할아버지, 길게 늘어진 꽁지머리, 잡초처럼 돋아난 안모(顔毛), 어디 하나 문명인다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강호동과 그 ‘일당’의 재치 있는 질문과 선생의 기발한 답변이 폭소와 함께 이어졌다. 선생의 지난 삶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두 살 때 어머니를 잃고 할머니 밑에서 거지처럼 얻어먹고 자란 이야기, 할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남의 물건에는 절대로 손을 대지 않았다는 ‘가정교육’ 이야기, 털과 체온을 겸비한 개와 함께 개집에서 노숙한 이야기, 학비가 없어 휴학을 거듭하다 전문대학을 7년이나 다녔다는 이야기, 미스강원 출신과 결혼한 알쏭달쏭한 숨은 이야기, 지붕에 올라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하루에 세 갑, 네 갑 피웠다는 ‘폐인’ 이야기 등 정말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기이한 스토리가 소개되었다.

방영 내내 그의 이야기에 혼이 쏙 빠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성장과 비교해보기 시작했다. “왜 저렇게 살았을까? 나도 50년대 초에 태어나 성장했는데, 나도 가난했는데, 나는 고등학교도 못 다녔는데, 대학도 독학으로 했는데, 나는 밥 빌어먹지 않았는데, 나는 개처럼 노숙하지 않았고, 목욕도 자주했고, 옷도 자주 갈아입었고, 열심히 공부해서 직장에 들어갔고, 35세에 서울에 아파트도 마련했는데....”

그러나 내 인생이 이외수 선생의 인생보다 성공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선생은 타고난 가난, 그 가난을 친구삼아 스스로 ‘자유고행’을 통해 인생의 진면목을 깨달은 도사라 생각되었다. 무릎팍 도사를 훨씬 능가하는 ‘참 진짜 도사’같았다. 그의 글, 그의 소설은 이러한 ‘자유고행’의 샘에서 넘쳐흘러 승화되는 ‘인생철학’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만일 선생의 글을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찔하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나는 이외수의 인생에서 배울 점과 배워서는 안 될 점을 생각해 보았다. 배울 점은 줄기차게 외길을 갔다는 것이다. 본인만이 할 수 있는 길을 평생 붙들고 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돈도 없고, 집도 없고, 먹을 게 없어도 방향을 틀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공을 못하면 끝까지 노숙자를 면치 못할 텐데도 무소의 뿔처럼 외길을 갔다는 점이다.

그러나 배워서는 안 될 점도 분명히 있었다. 우선은 외모를 가꾸지 않아 일찍 늙어버렸다. 63세에 저 정도라니 정말 보기 딱하다. 머리와 수염과 옷, 아무리 자유인이라지만 우리 평범한 사람들에겐 아직 좀.... 위생도 문제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다지만 젊은 날의 세월을 그렇게 틀어박혀 씻지도 않고, 개와 함께 이와 함께 비위생적으로 살았다니 명 짧은 사람 같으면.... 또 한번 아찔하다. 3일 동안 연달아 술을 마시고, 담배를 하루에 네 갑을 핀 것도 죽으려 작정한 것과 다름이 없다. 아무리 삶이 어떻고 철학이 어떻다 해도 생명이 꺼지면 소용이 없다.

이제 선생의 책들을 하나하나 읽어보아야겠다. 외면의 고행이 일구어 놓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그의 글에서 음미해 보아야겠다. 그리고 내면과 외면이 다 아름다운 사람은 될 수 없을지를 좀 더 생각해 보아야겠다.

(추신)
당장 나가 집 앞 서점에서 이외수의 '하악 하악'을 샀다. (2008.9.14 추석날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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