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무념 체험기
2020년 9월 21부터 어제까지 포천 조카사위 상에 다녀왔습니다. 조카사위라도 너보다 4살 많지만, 우리나라 평균수명으로 볼 때 아직 타계할 나이는 아닙니다. 너는 그 가까운 큰 누이 자손들과 정말 사소한 사유로 한동안 소원하게 지내왔습니다. 이런 일이 아니면 서로 연락을 잘 하지 않는 관계가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큰일을 당하면 연락을 합니다. 남매 혈육이니까요. 그분의 타계 소식을 들으니 저절로 눈물이 고였습니다. 아마 친척 간의 혈연적 무의식, 아니면 순간 비슷한 나이 너의 앞날이 오버랩했는지도 모릅니다.
고속 열차를 타고, 전철을 타고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로 갔습니다. 그곳에 간지도 정말 오래간만인데 환경이 몰라보게 달라져 있습니다. 차표 파는 직원이 보이지 않아 컴퓨터 자동 발매기로 차표를 사고 1시간을 기다립니다. 넓은 대기실이 마치 커다란 카페 같습니다. 물탱크만큼이나 큰 화분에 무성한 식물이 반짝이는데 군데군데 잘 배치된 소파들, 그리고 먹거리 상점들이 고급화되어 있습니다. 로봇이 눈알을 굴리며 고객들의 열을 점검합니다. 한 시간 동안 터미널의 디자인 환경과 교감하고 13시에 운천행 버스를 탔습니다. 지름길로 가는데도 1시간 20분쯤 걸리네요. 운천터미널, 그 모습은 40년 전 그대로인데, 택시를 타고 영북농협 장례식장에 당도하니 조카들이 눈물로 맞이하네요.
아, 인생무상, 이 말만큼 적절한 단어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人生無常인데 우리는 人生有常처럼 살고 있습니다. 불가에서의 주된 화두는 無! 지금 내가 있는 것 같지만 결국은 없는 것, 色卽是空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영겁으로 이어진다는 불타의 깨달음, 이 각성이 인간을 영원한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空卽是色 말이죠. 없지만 있고, 있지만 없는 것, 이것이 우주의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혹자는 불가의 이런 인식을 인간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되는 사상이라고 폄하하기도 하는데, 저는 그런 해석에는 동의하지 못합니다. 저 끝없이 광대한 우주를 본다면 저 허공 속에 창조의 무한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소우주가 되었나봅니다.
발인과 성당 예배를 한 후 차는 서울 승화원으로 갑니다. 승화원의 이름도 승화된 표현, 그런데 그 시설 또한 21세기형이네요. 주검을 화로에 넣어 재를 만드는 시설이지만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입니다. 젊은 남녀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한 줌 재를 깔끔히 담아 상주에게 전하는데, 과연 전문가답습니다. 과거의 미신적 관념들이 그들에겐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들이 화장하는 일도 일종의 디지털 작업처럼 보였습니다. 마치 그들은 인생을 달관한 모습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거기서 맛있는 육개장을 먹었습니다. 정서상으로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기도해야 할 것 같은데, 우리는 감정과 행동 사이에 차별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일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죠. 기나긴 3일의 시간을 뒤로 하고 하룻밤 더 조카 집에 머물며 대화하다 어제 집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철이 좀 더 든 것 같은 느낌입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순리대로, 무상무념 살다 보면 어느새 개체 인간은 승화할지라도 멋진 우리 후손들이 이 우주를 더욱 새롭게 창조해 가리라 굳게 믿습니다. 아멘, 나무석가모니니불! 2020.9.24.(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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