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깨달음
제가 목사님을 주제로 글을 쓰는 건 정말 처음입니다. 그런데 아침에 갑자기 목사님이 떠올랐어요. 사실 저는 잘 아는 목사님이 한 분도 없는데요, 그렇다고 잘 아는 스님도 한 분 없습니다. 저는 종교인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생활하니까요. 왜냐면 명색이 학자잖아요. 대단한 학자는 아니지만 말이죠. 하하. 그런데 종교인들이 고맙고 존경스러울 때가 더러 있습니다. 그분들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실천할 때 그렇습니다.
목사(牧師)님은 양치기 선생님입니다. 어린 양들을 잘 길러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사명을 가진 분들이니까요. 성경 말씀대로 어린 양들을 잘 보살펴 그들을 이상적인 세계로, 인간다운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 목사님이잖아요? 기독인들은 주로 사후 천국을 말씀하지만 제 생각에 천국은 별도의 딴 천지, 하늘에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과학적으로는 말이지요. 그래도 그러한 천국의 상정은 인간을 착한 아가페의 사랑으로 안내하지요.
하지만 불교의 스님들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목사님처럼 어린 양들을 사랑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석가처럼 스스로 세상의 진리를 꿰뚫어 깨닫고, 또 중생에게 세상의 진리를 꿰뚫어 깨닫게 하여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느끼며 살게 해주는 것, 그런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경전이든 텍스트로서의 불경을 좀 읽다 보면 어디서든 세상의 진리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습니다. 불교 경전은 수많은 인간관계를 사례를 들어 조목조목 그 이치를 설명해주니까요.
이 글은 목사님과 스님을 비교하고자 시작한 게 아니라 우리의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좀 더 쉽게 접근해보고자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어디서 막힐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목사님이든 스님이든 시민 누구든 다 인간인 건 확실하지요. 인간이라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는 다르고요. 말하자면 어떤 종교인이든 어떤 시민이든 인간이라는 데 가장 큰 방점이 있습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이 갖지 못한 인지능력과 지혜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동물이 생각하지 못하는 인간 중심 문명을 일으켰잖아요. 종교 역시 인간 문명의 산물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겠죠?
그런데 오늘 아침 생각한 건 모든 현상에는 이론과 실제가 있고, 이 둘이 조화롭게 작용할 때 인간사회가 합리적이고 안정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네 삶의 모든 부문에는 이론과 실제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 상보적 관계를 유지하며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론은 실제를, 실제는 이론을 뒷받침해야 형이상학이든 형이하학이든 참다운 실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해도 이론과 실제의 양면을 다 궁구해야 이론과 실제에 균형을 이루어 인간 세상의 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이론에 강하면 실제에 약하고 실제에 강하면 이론에 약하니 정말 모순이죠. 이렇게 된 근본 원인은 교육에 있다고 봅니다. 이론과 실제를 병행하여 가르쳐야 하는데 이론만 가르치거나 실제만 연습시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는 수학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알지 못하고 수학교육을 받았습니다. 도덕과 윤리는 시험 보기 위해 학습했습니다. 법학 전공자는 비전공자보다 법 위반자가 많습니다. 마케팅 이론을 배운 사람은 실제 마케팅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해병 장병이 수영을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음악 이론만 공부하면 악기를 잘 다루지 못하고 노래도 가수처럼 부르지 못합니다. 이런 사례는 정말 많습니다.
저도 이 모든 것에 예외는 아닙니다. 그래서 곰곰 생각했습니다. 정말 각자가 이 세상을 잘 경영하기 위해서는 목사님도, 스님도, 일반 시민도 자기 분야에서 이론과 실제를 균형 있게 연마해야 한다는 각성이 내려옵니다. 성경, 불경, 유학, 국어, 외국어, 수학, 사회 윤리, 과학, 공학, 음악, 미술, 체육, 경영, 서비스 등등 모든 부문에서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이 시대 교육의 사명과 역할인 것 같습니다. 아멘, 나무 석가모니불! 2020.9.17.(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