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와 인생
장마가 끝나니 무더위가 왔습니다. 옷걸이에 걸어 둔 양복에 곰팡이가 피고, 먹던 김은 금세 눅눅해 먹을 수가 없습니다. 몸은 끈끈이주걱이 되어 샤워장을 자주 들락거려야 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어디 여행 갈 수도 없고, 천상 집에서 에어컨을 켰다 껐다 하며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합니다.
모처럼 비트, 당근, 부추를 조금 사 왔습니다. 자줏빛 붉은색이 선명하고 아름다운 비트, 비트를 절반 썰어 접시에 담아놓고, 당근을 잘게 썰어 접시에 올리고, 부추를 썰어 양념간장을 만들고, 김을 꺼내 놓고, 달걀을 두 개 쪄 밥을 먹습니다. 식단은 간단하나 색깔은 곱습니다. 달걀이 있으니 채식은 아닙니다. 하하.
사는 것은 먹는 것이다. 먹은 다음에는 공부하는 것이다. 공부 다음에는 여행하는 것이다. 여행한 다음에는 또 공부하는 것이다. 여행은 새로운 체험, 새로운 느낌을 받고, 생각을 고치며, 내 삶을 각성하고, 진솔한 글을 남기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여력이 있으면 남을 돕는 것이다. 어제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버스를 타는데 부축해 드렸습니다. 기분이 좋았죠.
제주에는 이제 태풍과 호우가 지나갔다고 합니다. 대전은 아직 바람이 좀 불뿐 시원합니다. 무더위의 위세가 바람에 좀 꺾인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 집에서 피서하고, 책을 닫고, 게으름을 즐기며, 피아노와 우쿨렐레만 만졌습니다. 생각해보니 피서는 삶에 큰 도움을 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킬 타임일 뿐. 그래서 더워도 땀 흘려 일하며, 독서하고, 글을 쓰고, 삶을 숙성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서툴러도 음악의 즐거움은 좀 누려야 하겠습니다. 오늘 큰 바람이 불어도 내일의 태양은 빛날 것입니다. 2020.8.26.(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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