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찌 생각
일요일 오후 두 시 인근에 좀 나가보았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쓰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피해 갈지(之)자로 걷습니다. 동네 마트에서 20개들이 막대 커피를 한 통 사고, 대전보건대를 끼고 타원형을 그렸습니다. 어제와 다르게 벚꽃이 만발했습니다. 아직 4월도 오지 않았는데요. 어떤 벚나무는 변전기를 여러 개 짊어진 전봇대로 인해 저 화사한 의상을 버려버렸네요. 아! 저것도 문명인가? 과거 회사 근무할 때도 도시 미관을 해치는 전봇대를 보며 불만을 터트린 적이 있었습니다. 지장 전주 이전은 주민이 이전 요청을 해도 공사비가 많이 든다며 회사에서 이전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대통령이 지나가다가 한마디 하니 당장 이전하더라고요. 글쎄.
가양의 거리는 벚나무 가로수라 양쪽이 온통 벚꽃입니다. 서울 여의도 윤중로보다 규모는 작지만, 그런대로 멋집니다. 코로나만 아니라면 축제를 할 텐데 사람들이 다 마스크를 해야 해서 축제는 생각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전의 버찌 따 먹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집 뒷산에 있던 커다란 벚나무. 봄엔 앞뜰의 커다란 둥구나무의 야들한 연초록과 더불어 뒤뜰 벚꽃이 아늑한 산골짝 우리 집을 멋지게 꾸며주었었지요. 벚꽃이 지고 버찌가 익어 그 나무에 올라가 버찌를 따 먹으면 입이 새까맣게 변하던 그 시큼 달콤한 추억, 지금 생각해도 침이 고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저 벚나무들이 버찌의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버찌는 씨앗 기능도 없는 것 같습니다. 종자용이건 식용이건 사람들은 버찌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은행이나 버찌나 거리에 떨어져 천대를 받지요. 은행은 냄새가 지독한데도 주워가는 사람들이 있기는 있습니다. 하지만 버찌는 잘 열리지도 않을 뿐 아니라 알이 작아 그런지 주워 가는 사람을 볼 수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 맛있던 그 산 과일들이 지금은 맛이 없어졌습니다. 으름도 예전 맛이 안 나고, 아마 예전 맛이 나는 건 잘 익은 머루, 다래 정도일 것 같습니다.
세월이 가니 모든 게 변합니다. 아마 신세대들은 우리 세대와 근본적으로 다를 것입니다. 성장 환경이 우리 때와는 뿌리부터 다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상이 편해져서 우리가 체험한 원시 채집경제의 교훈과 운치를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요즘 거리에 나서보면 청소년 두세 명만 지나가도 여지없이 들을 수 있는 욕설이 있습니다. 쌍시옷과 존나입니다. 여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녀평등이라 여성들이 욕도 담배도 잘 피웁니다. 생물학적으로 해롭다고 해도 사회학적인 성 평등이 더 우선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세대가 이들 신세대의 행태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옛날의 고행 생활을 체험시킬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 하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세상을 고운 시선으로, 평화롭게 사랑하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엮으며 잘 살아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세대의 역사가 될 것이기에 요즘 피어나는 저 꽃들처럼 아름답게 인생을 꽃피워, 미래의 새역사를 써 가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 코로나 사태에 젊다고 맨발 슬리퍼 직직 끌고, 마스크 없이 맨입으로 다니지 말고, 거리에 침 좀 뱉지 말고 저 꽃들처럼 아름다운 청춘을 맞으시길 기원합니다. 2020.3.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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