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과 보살핌
건축은 보살핌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대들보, 서까래, 기둥 등 모든 골격과 부속 자재들이 서로 보살피고 있어 건축물이 반듯하게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의인화한 표현이지만 진정으로 와 닿는 표현입니다. 세상의 만물은 서로 보살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생성과 소멸도 어찌 보면 보살핌인 것 같습니다. 생태계 먹이사슬까지도 큰 틀에서 보면 보살핌의 일종인 것 같아요. 잡아먹는데 보살핌이라니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그런 먹이사슬 속에서 생명은 공존하는 게 아닐까요?
서로 보살피는 가운데 세월은 가고 또 언제나 새로운 세월을 잉태합니다. 새 세월이 항상 이상적인 것은 아니나 그래도 물질적으로는 나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이 조작하는 측면이 많습니다. 과학 기술은 사람이 자연을 조작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사람 중심으로 돌연변이를 해 왔고요. 사람들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표현을 써 가며 우쭐대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작용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요즘의 신종 코로나는 어떤 현상일까요? 이제 코로나도 미국이 1위를 탈환했습니다. 몇십만 명이 타계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마치 중세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떠난 일을 연상시킵니다. 그래도 현대 의학이 조만간 그런 비극은 막아주리라 기대합니다.
사람들은 코로나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합니다. 코로나의 확산에는 공은 없고 과만 있다고 봅니다. 방역에 공을 세우고 있는 사람들은 슈바이처와 나이팅게일처럼 인류애를 발휘하는 이 시대의 새로운 의료진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코로나에 감염될 위험에 있는데도 환자를 진단하고 돌봅니다. 그래서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코로나 확산의 변곡점을 찍고 지금 소강상태를 유지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날마다 방역 뉴스에 마음을 졸이며 우리 인간의 인간 됨을 반성합니다. 당신은 누구를,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보살피고 있느냐고.
불교에서 말하는 보살(菩薩)은 중국 사람이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보디 사트바)를 보리살타(菩提薩埵)로 음역한 말이라고 합니다. 보리살타를 줄여서 보살이라고 하는데요,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지장보살 등 많은 보살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절묘한 것은, 보살은 세상을 어느 정도 깨달아서 부처가 되지 않고 중생을 보살피는 업무를 수행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말 ‘보살핌’과 딱 맞아떨어지죠. 요즘은 정말 보살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모든 현상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보살의 정신으로 이 세월을 다독이며 살면 좋겠습니다. 절에서 회색 몸빼 입고 다니는 여성분들도 진짜 보살이면 참 좋겠습니다만. 참, 보살은 성 구별이 없으니 남성도 위대한 보살이 될 수 있답니다. 하하. 2020.3.2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