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아나운서
가을엔 오색 단풍, 산들바람 부는 산과 들이 좋다. 낙엽이 뒹구는 아스팔트 회색 도회의 가을은 쓸쓸하다. 하지만 황금빛 가을 산과 들판은 풍요 그 자체다. 시골집 마당, 빨강 고추와 그의 잠자리, 노랗게, 빨갛게 물들어 가는 오곡백과, 사과, 석류, 대추, 밤, 그리고 단 감(甘), 우리 ‘동물의 왕국’엔 태양과 대자연이 베푸는 생명의 축제가 한창이다.
중학교 때 멋모르고 배웠던 흑인 노래 “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가 생각난다. 부분적으로 기억이 흐린 그 가사를 인터넷에서 받아 입속으로 불러본다.
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 오곡백과가 만발하게 피었고, 종달새 높이 떠 지저귀는 곳
이 늙은 흑인의 고향이로다.
내 상전 위하여 땀 흘려가며, 그 누른 곡식을 거둬들였네, 내 어릴 때 놀던 내 고향보다 더 정다운 곳 세상에 없도다.
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 오곡백과가 만발하게 피었고, 종달새 높이 떠 지저귀는 곳
이 늙은 흑인의 고향이로다.
내 상전 위하여 땀 흘려가며 그 누른 곡식을 거둬들였네. 내 어릴 때 놀던 내 고향보다 더 정다운 곳 세상에 없도다
이 노래는 이제 너에게도 향수를 부추긴다. 몸이 고향에 있건 없건 향수는 진한 옛 향기를 풍긴다. ‘상전’을 위해 일했다는 가사 주인공의 고뇌는 굳이 따지고 싶지 않다. 너도 대자연의 ‘노예’이니까. 대 자연은 우리 모두의 ‘상전’이다.
2019년 10월 12일 아침 6시 27분, 대전발 서울행 무궁화 열차를 탔다. 목적지는 성남 아트센터 방송국(?). 너는 어느새 자유 아나운서가 됐다. 할아버지라도 열 살 전후의 새싹 어린이들과 라디오 방송을 한다. 이번에 함께할 위례 라디오 프로그램은 빛과 색깔에 관한 이야기, 성남 가을 축제의 큰 주제와 같다.
빛은 에너지와 색깔이다. 생명의 원천 태양으로부터 석가모니(釋迦牟尼, Sakyamuni 624-544)의 광명, 에디슨(Thomas Edison, 1847-1931)의 전기 문명, 댄 플래빈(Dan Flavin, 1933-1996)의 빛 예술, 우리들의 관광까지, 우리는 온통 무지개처럼 살고 있다. 무지개 일곱 색은 흰색으로 변했다가, 투명하게 사라졌다가 어느새 럭키쎄븐 영롱한 물방울이 된다. 우리 삶은 변화무쌍한 희망의 무지개다.
13시부터 50분간 위례 차례, 12명의 어린이 네 명씩 차례로 초록, 빨강, 파랑을 소재로 준비한 대본에 따라 방송을 진행했다. 진짜 ON-AIR 송출하는 성남 FM, 약간의 긴장을 맛본다. 어린이 기자들이 준비한 빛과 색깔의 역사와 미래? 너는 할아버지라도 긴장이 되는지 가끔 발음이 꼬였지만 그래도 주눅이 들지 않아 안도했다. 아나운서는 너의 10대 때 꿈이었는데 이렇게라도 꿈은 이루어지는 건가? 하지만 이 말투조차 상투적으로 느껴질 만큼 너는 젊음을 구가했다.
저녁 6시 15분 수원에서 열차를 타고 땅거미 내려앉는 가을 벌판의 향수를 다시 맛보며 내일 아침 새로운 태양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태양 빛은 우리에게 영원한 행복을 내린다. “You are my sun shine, my only sun shine, You make me happy when skies are gray.”♫. 2019.10.12.(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