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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수필

변화와 변덕

 세상은 날마다 변한다. 우리도 날마다 변화한다. 정부도, 기업도, 개인도, 세계도 변화를 계속하니 우리는 ‘변화하는 존재’이다. 이렇게 변화하다 개체 인간은 늙고 떠나가도 역사는 영원히 새로운 세대를 맞으며 변화와 발전을 지속한다. 따라서 인간세상은 대를 이어 영원히 새로운 ‘생명의 변화무쌍(變化無雙)’으로 충만 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우연히 ‘변덕’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단어의 구성이 변할 변(變)자와 큰 덕(德)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전을 찾아보니 나의 생각이 딱 맞는 것이었다. “변덕(變德)스럽다.” “변덕(變德)을 부리다.”등으로 변덕의 의미는 그렇게 좋은 의미는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덕(德)’이 변하기 때문이다. 덕이란 크고 넓은 포용력이다. “그 사람은 덕이 있어.” “그분은 참 덕스러운 분이야”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 ‘그분’을 뵙고 싶어진다. 어쩌면 그렇게 덕이 있어 칭송을 들을까? 하고.

그런데, 변덕(變德)은 좋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 사람 변덕쟁이야.”, “그 사람은 변덕이 죽 끓는 듯해.” 하면 좋은 느낌이 오지 않는다. 사람이 변덕스러우면 자꾸만 결정을 번복하게 되어 신뢰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변덕쟁이’는 이랬다저랬다 그때그때 달라서 종잡을 수 없게 한다. 대체로 신중하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 변덕을 부리는 경우가 많다. 즉흥적으로 결정해 놓고 나중에 계산하여 불리한 것 같으면 ‘변덕을 부리는’ 것이다.

세상에는 의외로 변덕쟁이가 많다. 변화는 일종의 자연의 섭리라서 잘만 조정하면 덕스러움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지만 변덕은 사람의 즉흥적 태도에서 나오기 때문에 ‘좋은 변덕’으로 발전하기는 어렵다. 변덕도 좋은 방향으로 발전한다면야 얼마나 좋으랴마는 아직까지 변덕 치고 좋은 방향으로 발전된 경우를 별로 보지 못하였으니, 대개는 인간관계의 신뢰가 금가고, 일이 성사되지 못하고, 계획이 취소되고, 약혼이 파탄에 이르는 것이다.

우리는 덕스러운 인간이어야 한다. 덕스러운 인간이 덕스러운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다. 사람들을 만날 때 진실하게, 어떠한 저의(底意)도 없이 순수하게 대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상대방의 덕스러움을 느낄 때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때, 그 상대방의 덕을 붙잡아 나의 덕과 연결할 수 있는 그런 관계를 형성한다면 그게 정말 덕스런 인간관계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내가 진실하고 덕스럽게 대해도 상대방이 저의를 가지고, 요리조리 자기 입맛에 맞추어 감탄고토(甘呑苦吐)하려 들면, 그 인간관계는 ‘덕스럽게’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가정과 사회, 정치, 경제, 문화에서 발전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가정과 사회, 정치, 경제, 문화에서 변덕을 부리지 말고, 진실하고 덕스러운 포용력으로 우리의 모든 크고 작은 당면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이것이 곧 도덕적 인간사회가 아닐까? 새삼 공맹시대(孔孟時代)의 도덕정치(道德政治)는 어떠했는지 매우 궁금해진다.  我作新論語一句, “鐘子曰 德卽仁 仁卽德 德人必有仁人 仁人必有德人 德仁政 世平和 變德政 世不和” (2008.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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