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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컬럼/컬럼

국어정신과 '로스쿨'

최근 교육부의 ‘로스쿨’ 지정대학 결정으로 대학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로스쿨에 선정된 25개 대학은 목적을 달성하여 좋겠지만 그러하지 못한 대학들은 ‘울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우리나라는 ‘로스쿨’로 선정된 25개 대학만이 법조인을 배출할 수 있게 되었다. 교육당국이 심사숙고 끝에 만든 교육제도이니 일단 수용해야 하겠지만 25개의 특정대학만이(자기들끼리만) 법조인을 양성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쩐지 교육의 공정성에 위배되는 것 같아 개운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필자가 시비를 걸고자하는 것은 ‘로스쿨’ 선정에 있어서의 대학 간 공정성이 아니라 왜 우리나라에서 법조인을 양성하는 대학원을 ‘법학전문대학원’이라는 국어를 잘 사용하지 않고 ‘로스쿨, 로스쿨’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미국의 제도를 본떠서 그런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엄연히 국어가 있고, 국어에서는 ‘법학전문대학원’이라는 용어가 있는데도 모두들 왜 ‘로스쿨, 로스쿨’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한 국가의 언어정책과 이에 따른 올바른 국어의 사용은 그 나라의 문화를 가름하는 척도라고 볼 때, 공무원, 지식인, 시민들이 자주 쓰는 ‘바른말, 좋은 문장’이야 말로 한 나라의 문화수준의 가늠자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식인들이 솔선하여 외국어 사용을 좋아해 만들지 않아도 될 수많은 외래어를 만들어냈고, 외래어를 쓰는 것이 마치 ‘교양’의 척도처럼 되어왔다. 일제 때는 일본어가 유입되어 언중(言衆)의 입에 굳어졌고, 광복 이후에는 영어가 우리 국어생활에 깊숙이 들어왔다. 그래서 영어를 못하는 사람도 날마다 ‘영어외래어’를 쓰고 있고, 거리의 간판들도 ‘영어외래어’ 일색이다.

또한 요즘 ‘국어오염현상’은 신세대간에 유행하는 각종의 ‘축약형’ 말들이나 비속어들, 인터넷 댓글(‘리플’은 reply의 약자라나)에 올려지는 욕설과 ‘개그맨’들이 쏟아내는 ‘웃기기’용 이상한 말들로 인해 언어 변화가 급속하게 일어나고 있어 이대로 한 30년만 더 가면 과연 우리의 국어가 어느 지경에 도달할지 염려스럽다. “야, ‘ㅆ새’야, 어디 가냐? 오늘 날씨 ‘좃나’ 춥네. 근데, 너 ‘로스쿨’ 갈 거냐? ‘로스쿨’ 들어가기 ‘좃나’ 어렵데. 날마다 ‘스터디 그룹’나가서 ‘피터지게’ 공부해도 어렵데. 건 그렇고 추운데 한잔하러가자? 오늘은 내가 ‘쏜다’.”

어디 이정도 뿐이겠는가? 학생들의 논문이나 학자들의 글, 소설가 시인들의 작품 속에서도 이러한 말들이 버젓이 등잘 할지 모른다. 언어는 사회적 습관이므로 ‘로스쿨’, ‘리플’, ‘쏘다’, ‘좃나’ 등 외래어나 비속어들이 통용되고 굳어지면 그 말들이 사전이나 논문, 판결문에 등장하게 될지도 모른다.

국어사전. “좃나 : ‘좃나게’의 줄인 말. ‘매우’ ‘심하게’의 의미”

신세대 법조인의 판결문.  “이 사건은 ‘로스쿨’을 졸업한 김 아무개가 ‘코리언스터디’를 전공한 박아무개에게 한턱 ‘쏘지’ 않는다는 이유로 ‘좃나’ 괴롭혀 정신이상에 이르게 한 사건으로 ‘시카네의 금지’에 위배되므로 '라이프 롱' 격리를 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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